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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Jan 01. 2021

보물 쪽지 찾는 정원사

정원사의 오두막에서 2020년 2월

겨울이 그냥 지나가기는 아쉬웠는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며칠 전 정원사의 오두막에 커피를 마시러 다녀왔습니다. 장미를 가꾸는 정원사의 오두막에는 지난가을에 말린 꽃들이 있고, 제가 즐겨 찾게 만드는 여러 종류의 정원 책들이 있는 자기만의 서재 같은 곳입니다. 


사방으로 4걸음 정도 걸을 수 있는 작은, 저의 은신처보다 큰 정원사의 오두막은 천정 높이가 무려 4미터 정도 되는 곳으로 우리 집 오두막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는 곳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아가는 정원사의 오두막을 두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은 이런 작은 장소를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돌아보면 몇 해전 ‘요코하마’로 일본 주택 답사를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건축가의 집에도 재치 있는 오두막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오두막은 누상(땅에서 띄운 구조) 형으로 필로티(기둥으로 구조물을 받침) 형식을 갖추고, 계단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적절치 않고, 사다리라고 부르기에는 꼴이 갖추어진 발 디딤판을 이용해, 신발을 벗고 발판을 밟아 올라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재미에 기반을 둔 ‘아지트’ 같은 곳이었습니다. 감히 뱀이라던가 쥐와 같은 해충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장소였던 셈이죠. 주택 답사의 가이드 역할을 맡았던 그는, 우리들을 위해 자기만의 오두막을 공개하고 차를 따라주며, 비밀의 장소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저도 오두막에 대한 동경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보이시죠? 건축가들이 사다리와 계단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공중누각'에 오르고 있습니다.


다시 정원사의 오두막으로 돌아올까요? 10여 년 넘게 함께 일하며 정이 들어버린 정원사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는 이미 알만큼은 알아버린 서로의 일상에 만족하는 느긋함이 배어있습니다. 


도끼로 쪼개 만든 너와(나무 기와)가 오두막의 지붕과 벽을 덮고 있어, 멀리서 보더라도 흔하지 않은 외형을 갖춘 정원사의 아지트에는 소박한 작은 탁자가 있고, 듣기 좋게 귀를 호강시켜주는 스피커와 눈요기 책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산미 향 가득하게 로스팅한 커피 원두들이 놓여 있습니다. 최근 들여온 새로운 책들도 몇 권 놓여 있더군요. 책을 보면 그냥 두지 못하고 표지의 앞뒤를 살펴보고, 저자는 누구인지 서문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목차에 눈이 가는 곳은 없는지, 사진이나 그림은 어떤 풍경인지 잠시지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책을 살펴보게 됩니다. 서로 익숙해진 사이라 대화 중에 책을 보고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무시한다거나, 휴식을 방해한다고 흉을 보는 처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무관심하지도 않은 적절한 공간을 두고 있는, 한옥으로 치자면 툇마루 정도 되는 거리 같습니다.  


새로 구입한 책 중에 영화 <플라워쇼>로도 소개된 아일랜드의 정원사 ‘메리 레이놀즈’의 『 생명의 정원 』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르륵 책을 넘기면서 발견한 단어들에 ‘생명력’이라는 키워드들이 자주 보입니다. “정원에 소원 또는 요구사항을 빌기 위한 특별한 장소를 두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소원에 담긴 의도가 두 배로 강해질 것이다. 땅은 장소가 주는 의미를 알고 이해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지지할 것이다.”


‘Community garden’에 대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던 정원사는 노트를 하며, 뭔가 풀리지 않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있다가 ‘커뮤니티 가든’이 무엇인가요? 라며 제게 묻습니다. 제가 나름 다른 해답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이럴 때는 수다의 근성을 살려 답변을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고 강의 준비를 거들었습니다. 


“저에게 ‘커뮤니티 가든’은 형태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서 찾아보고 싶어요. 우리 동네를 예로 든다면 집집마다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있어요. 허브가 많은 집도 있고, 토마토, 대나무, 파, 장미 같은 특화된 채소, 꽃, 나무가 있는 집들도 있어요. 3호 집 누님은 박하 허브와 가지가 많아요. 여름이면 항상 나누어 먹게 됩니다. 가지 반찬을 해서 동네에 나누거나, 박하청을 만들어 작은 병에 담아 주거든요.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 가든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을까요?”


‘Garden’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장소에 집중해 있던 정원사는 마치 보물 쪽지라도 찾은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보냅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나눌 수 있는 ‘꺼리’를 만들어 내는 장소와 생활 모두를 ‘커뮤니티 가든’이라고 할 수 있네요” 별것 아닌 생활의 이야기들을 두고 건축가와 정원사가 히히덕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더군요. 산미 가득한 커피를 마시면서 『생명의 정원』을 스마트폰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우리 동네 박하 청과 가지 반찬, 토마토, 고추, 초코민트, 연잎차도 ‘생명의 정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당에서 파릇하게 새싹을 내고 있는 허브들이 겨울과 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땅을 딛고 이웃들과 살다 보면 커뮤니티 가든이 생기고 생명의 정원을 갖게 됩니다. 우리 집 정원에는 튤립, 수선화 같은 알뿌리 화초들이 새봄에 햇살과 접선을 하려는 듯이 빼꼼히 파란 꼭지를 내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때 보았던 피노키오의 기다란 코끝처럼 보이는 계절입니다. 바람도 지나가고, 햇살도 깊이 들기 시작하니 저의 은신처인 작은 오두막에서 연잎차를 한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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