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촌리 주택
새벽부터 비가 온다는 예고대로 아침에 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날은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가치를 글로써 전해주는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 묘사되는 초록의 봄이 가까이 느껴집니다. “봄 한철 살이 식물의 활활 타는 생명은 숲의 나머지 생물에게도 불을 당긴다. 무럭무럭 자라는 뿌리는 흙의 암흑 생명에 기운을 불어넣어 영양 물질이 봄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흡수하고 저장한다.”
이사 와서 첫 해에 심은 뒷마당 매화나무에 그린 크림색 꽃망울이 조밀 조밀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난해 봄처럼 이번 봄에도 꽃이 피기 전에 매화꽃차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비가 오니 초록의 싹들이 생생하게 올라옵니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나무를 마주하고 있으면 자연과 나의 삶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내 앞에 서 있다고 여겨집니다. 꽃차를 마시면 저도 나무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오늘은 성사동 세가족 현장에서 고촌리 현장으로 넘어왔습니다. 성사동과 고촌리는 멀지 않은 곳이라 한 번에 두 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멀게만 느껴지던 초행길들이 이제는 익숙한 장소가 되어갑니다. 머지않아 집주인이 그 집에 살면서 반길 때가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계가 마무리되고,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한 고촌리 주택도 외벽 마무리뿐만 아니라 내부 마감 공사까지 정리가 되어 갑니다. 비용이 허락하는 한 좋아하는 나무를 충분히 써볼 수 있어 안정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집이 되었습니다.
안갯속에 가리어졌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고 할까요? 집이 선 자리에 어울리는 건물인지, 용도에는 맞는지, 그동안 건축가인 우리들의 허세나 무관심은 없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어찌 보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땅과 건축주, 건축가만 있었다면 이제 땅 위에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건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1:100, 1:50의 크기로 그림을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 서로의 생각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일치했다고 여기고 시작한 집 짓기가 1:1의 건물로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서로의 민낯을 보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그대로 드러난 건축물을 지켜보면 우리들이 어디를 향해 왔는지 서로의 지점은 일치했었는지 알게 됩니다.
건축가는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손들이 모여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벽돌을 쌓는 조적공의 벽돌 한 장 한 장이 벽을 이루고, 설비팀의 손끝에 물과 공기가 오가는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언뜻 보기에 설계자가 곧 건축가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말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자도 건축가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는 ‘만다라’의 표현이 있습니다. 만다라로 표현된 숲에 핀 이끼, 고사리, 버섯류, 초목류, 교목류는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숲의 전체로서 작용하는 것처럼 건축물 하나가 지어지는 과정도 숲의 만다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철근공, 형틀공(콘크리트 틀을 짜는 기능공), 조적공, 전기공, 창호팀, 목수, 이들 모두는 숲의 만다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진짜 건축가들입니다.
고촌리 현장의 오늘 미팅 주제는 현관문 재료의 선택과 주방가구 협의입니다.
우리 집만의 개성을 표현할, 어울리는 현관문을 선택하는 몇 번의 논의 끝에 Blacksus라는 스테인리스 금속판을 이용하여 현관문을 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계획된 나무문보다는 유리와 벽돌에 어울리는 가공하지 않은 금속판을 사용해야겠다 싶어졌는지 현장소장이 모임을 요청하였습니다. 기능올림픽 금속부문 메달리스트인 현장소장은 “동판으로 하려고 모델을 만들어 보았는데 동판(구리판)이 마음에 쏙 들어오지 않네요. Blacksus라면 내구성도 있고, 단정한 힘도 있으니 어떨까요?” 참여형 건축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건축주와 시공소장, 디자이너가 정해진 도면의 시야를 넘어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입니다. 좋은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그림에 갇힌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개월간 현장을 운영하면서, 땅과 건물의 흐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시공소장의 의견에 비중이 실리게 마련입니다.
나무문에서 금속 현관문으로 바뀌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동안 공사하는 모습을 보아온 시간과 설득력 있는 제안을 수용하는 건축주의 모습에서 또 한 명의 건축가를 보게 됩니다.
다음에 저도 제 집을 다시 지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땅과 연결되는 주택의 현관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아주 많은 장소가 현관이라는 것을 배운 셈이죠. 출입이 가능한 현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손님이 오셨을 때는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오기는 애매한 순간에도 넉넉한 현관이 있다면 잠시 머무르는 응접실의 역할, 신발과 생활의 소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의 기능, 여름과 겨울 온도 차이를 극복하는 방풍실의 기능까지 지난 몇 해를 살아보면서 제가 발견한 현관의 역할은 출입구 하나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집중형 주택이 대세가 되면서 대문과 마당, 대청이 없어진 이후로 우리들의 집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대청, 봉당(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실내)의 역할이 사라진 셈입니다. 한 가지 더하자면 현관은 겨울철 햇살이 따뜻하게 드나드는 온실 같은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세요 이쯤 되면 현관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의 삶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소중한 장소라는 것에 동의가 되시는지요?
고촌리 주택의 현관은 넉넉합니다. 건물 전체의 면적은 1층과 2층을 모두 합해서 100 m²가 채 되지 않지만 충분한 역할을 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제가 안내할 테니 집주인이 되어 들어선다고 생각하고 한 번 따라와 보시겠습니까? 우선 현관에 들어서면 아담한 크기의 봉당(신발을 신고 계속 돌아다녀도 되는 장소)이 나오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는 곳과 이웃해서 작은 화장실이 있어, 밭일과 정원일을 하다 급한 볼일을 보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주 생활공간은 2층에 두면서 손님이 오시면 별채의 성격을 수행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도록 창과 미닫이 두 짝 문이 가득한 작은방과 커피를 내리고 파스타 정도는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주방 같은 싱크대 선반이 현관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건축주 내외분과 가족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의 기억을 그려낼지 궁금해지는군요. 저라면 이곳 1층에서 차 마시고, 책 읽고, 정원일을 하다 잠을 잘 때가 되어서야 신발을 벗고 2층으로 올라가게 될 것 같습니다. 남편분은 1층에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휘파람을 불지는 않을까요? 노래하는 건축주의 모습을 상상하게끔 마무리되어가니 고맙고 감사한 계절입니다. <202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