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은 슈퍼맨

눈 치우기와 비료 100포대

by 빵굽는 건축가

(2020년 2월 18일에)


이번 겨울 마을회의는 2월 16일입니다. 윤달이 낀 설을 지내서 그럴까요? 생각지 않던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겨울 추위가 슬쩍 넘어가는 법이 없지. 겨울은 이렇게 추워야 제맛이 나는 거야”라며 추위라면 질색이라던 동네 식구들도 당연하게 동장군을 맞아들입니다. 겨울에는 역시 입에서 입김이 좀 나고 발걸음을 종종 거리면서 출근길을 나서야 한해를 온전히 지내고 있다는 느낌을 몸으로 원하고 있나 봅니다.

내리는 눈이 그치지를 않으니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눈벽돌로 이글루를 만드는 모습을 마을 톡이 올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아 어릴 적 겨울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세대차이가 몇 갑자는 되지만 나와 다를 바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좋아 보입니다. 우리 동네가 경기도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시골 중에서도 제법 깊은 산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 평균 기온이 시내보다 3도 정도가 낮으니 시내는 비가 온다고 해도 이곳은 눈이 올 때가 많습니다.


오랜만에 눈 다운 눈 치우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 들어 제대로 눈을 치운 것은 이번 주가 처음이군요. 역시 겨울에는 뽀드득 소리를 느끼며 지내는 맛이 있어야 겨울 답습니다. 먼산부터 가까운 언덕까지 흰 눈으로 덮이면서 마을 주차장의 차들도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각 집에서 한 사람씩은 눈을 치우러 나오는 것이 기본처럼 지켜지는 이른 아침, 각자의 출근길을 위해서도 동향에 자리한 마을 입구의 눈 치우기는 필수 사항입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아침에 집 앞마당 눈 치우기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동네로 이사 온 후로 8년째 눈 치우기를 하다 보니 눈 치우기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들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눈삽의 활용방안입니다. 마을길의 경사를 내려갈 때는 일렬로 서서 어른 서너 명이 죽 밀고 내려갑니다. 눈을 치우는 트랙터 같은 모습을 하고 말입니다.


트랙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분을 빼놓을 수가 없군요. 시골 동네에서 이장님은 슈퍼맨 같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동네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고 마을 살림살이를 소소하게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은 트랙터를 몰고 반경 1킬로미터 정도의 도로와 마을길까지 눈 청소를 도맡아 하는 마음과 역량이 필수인 역할입니다. 저도 이 동네에 오래 살면 언젠가는 이장이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사 온 첫해 겨울 새벽녘에 트랙터를 끌고 눈 청소를 하는 이장님의 듬직한 모습에 이장이 되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감히 이장을 꿈꾸어보다니 잠깐이지만 정말 언감생심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시골 동네에서 이장님은 ‘히어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장님이 마을 입구에 비료를 100포대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10집이 골고루 나누고 마을 정원에 뿌릴 비료까지 더하면 한 해에 필요한 비료가 100포가 됩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장님께서 전화를 주십니다. “내년에도 농협에 비료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비료 100 포면 되겠지요?” 시골에 살지만 아직도 도시 냄새를 벗어버리지 못한 우리 동네 식구들을 위해 올해도 비료를 친히 챙겨주셨습니다. 마을 톡에는 각 집에서 비료를 몇 포씩 가져갈 것인지 셈을 나누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소소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살면서 비료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지금 모습이 그럴싸하게 괜찮습니다. 우리 집에는 퇴비장이 두 곳이 있어서 지난해에도 올해도 비료를 쓰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음식물을 쓰레기로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모두 퇴비장으로 가고 있으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이란 게 별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시작되는 것이네요. 도시에서의 삶과 차이 나는 것 중에 하나가 음식물 처리방법입니다. 집 앞마당에 놓은 텃밭 덕분에 저도 조금 보탬이 되고 있네요. 그나저나 이장님 올해도 감사합니다. 올해부터는 우리 집 앞마당을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다 같이 파이팅 한 번 해주세요. 파이팅!!


pimg_7184471112450939.png 마을톡에 올라온 비료 나누기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장소에 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땅을 밟고 사는 이유 때문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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