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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Jan 06. 2021

‘슈톨렌’과 이웃 동네

풀뿌리 모임이 살아있는 지역

(2019년 12월 22일에)


흰색 빛깔의 1층과 2층 건물, 할머니들의 5일장과 붉은 수수팥떡, 주근깨 아주머니의 달달하고 얇은 깨 호떡, 골목길 할머니의 두툼한 손만두 가게, 투박한 가정용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파란 언덕 위에 자리한 빨간 경사 지붕의 하얀 과수원집과 짙은 보랏빛 포도, 급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발걸음, 가정식 백반집과 칼칼한 메밀칼국수, 백성 교회의 찬송과 시끌하고 따뜻한 점심 떡국, 동네병원답게 포근한 의료생활협동조합, 자연과 사람을 지키는 안성천 살리기 시민모임, 한경대학교 후원의 보랏빛 야생화 정원까지 지역에 자리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동안 지역에 대한 마음속 스케치들이 남아 있습니다. 


공동주택이 들어오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유행 따라 심하게 변한 곳도 있지만 아직은 밉지 않은 정도로 그 원형을 가진 곳이 많습니다. 인근 평택이 도심화되어가는 것에 비해 인구 유입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농지역답게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살면서 이동 거리가 짧아, 출퇴근 시간 때문에 힘이 들거나, 집값이 비싸서 걱정이라는 표현과  ‘하우스푸어’나 부동산 폭등 근절 대책 같은 일은 상관없는 소식처럼 들리는 곳입니다.  


단골 식당에 가면 이웃을 한 두 사람쯤은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작은 생활권이라고 하고 싶은 곳입니다. ‘한 사람이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자기만의 울타리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 같은 곳이라고 할까요?. 동네책방인 ‘화성 서점’은 다행히도 제자리에 있고, ‘광신로터리’ 몫 좋은 곳에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저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주고받고 사이입니다. ‘세월호 서명’도 같이 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며 ‘전쟁반대, 평화정착’ 피켓을 함께 들던 씩씩한 아주머니입니다. 앞으로도 10년은 더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말씀에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옛것은 구식, 불편함이라는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전에 알던 사람들과 점포, 길거리의 풍경은 익숙함과 함께,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친밀함의 밀도 같은 것이 있습니다. 큰 도시에서라면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역의 시의원에게 개선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가족의 안부를 나눌 수 있고, 딸아이와 면사무소에서 열리는 주민자치위원회에 참석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보장되는 도시와는 다른 속도가 있는 곳입니다. 


 <도시는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저술한 ‘에릭 클라이 넨 버그’는 “사회적 구조(social infrastructure)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만들어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선택한 지역 사람들의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 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출자한 지역 병원인 ‘의료생활협동조합’은 우리 앞집 형님 내외분이 일하는 직장이고, 동네 사람들 모두는 조합원입니다. 7호 집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생협 직원으로 취업해서 미주알고주알 병원 이야기를 해주니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단정하고 소박한 병원과 한의원은 익숙한 얼굴의 의사 선생님들이 맞아줍니다. 보통 병원에서  “어떻게 오셨나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가 첫 질문이라면 ‘의료생협’에서는 “잘 지내죠 딸은 올해 몇 살 되었어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는 가족의 안부로 진료를 시작하는 곳입니다. 진료와 치료 외에도 다양한 소모임 활동으로 커뮤니티를 이끌어가는 의료생협은 요사이 흔하게 회자되는 ‘공동체 커뮤니티 플랫폼’ 역할을 20년 넘게 유지하며 공동의 관심사와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작은 소모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공동체와 커뮤니티에 관한 책들 중에는 작가들이 경험하지 않은 산술적 사례들을 관찰자와 조사자의 입장에서 옮겨 놓은 글들을 보게 됩니다. 수박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박을 먹어본 사람 말을 듣고 그것을 받아 적고 수박의 모양을 서술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만병을 다스리는 약처럼 ‘커뮤니티, 공동체’라는 단어를 처방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본래의 분위기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데 유행 따라다니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소속감과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특별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식할 수 있는 규모의 크기에서 오는 친밀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와 친밀도를 유지하며, 이웃이라고 느끼고, 지역에 소속되어 활동할 수 있는 적정한 거리와 사람 수는 몇 명일 까요? 


친구가 보내준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 ‘슈틀렌’을 들고 이웃 동네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마지막 정원일을 마무리하느라 춘천에서 한 달 가까이 지낸 정원사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현장 이야기도 듣고 왔습니다. 정원사의 둘째 딸이 큰 딸에 이어, 올해 조경 대학에 합격하면서 가족 모두 정원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자니 덩달아 설레더군요. 올해 크리스마스는 하얀 빵 ‘슈틀렌’과 함께 맞이합니다.   

가운데 하얀 빵이 '슈톨렌' 커피 해피 사장님이 보내주신 커피랑 함께 정원사 가족과 마시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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