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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Jan 03. 2021

‘살고는 있지만 살고 싶은 곳이 아닌 현재의 집’

빵 굽는 건축가의 설렘

(2020년 2월 7일)


빵 굽는 아침은 설렘과 분주함이 동시에 일어나고, 하루 중 아끼는 아침 시간이 금방 지나가게 합니다. 오늘 아침은 빵에 들어갈 팥(밤사이 불려놓은 팥)을 올리고, 겨울 동안 모아  말린 귤껍질을 차로 우려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곁들여서 빵을 구울 때 마늘도 같이 굽느라 괜히 손놀림도 바빠집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빵을 굽고, 동네에서 빵을 먹고 싶다고 하는 (은근한) 무보수 주문이 들어오거나,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으면서 지인의 집에 커피를 마시러 갈 때 빈손으로 가기 그러니 가져다 줄 빵을 굽다 보면 일주에 두세 번 정도 굽게 됩니다. 생업으로 하고 있지 않으니 시간이 될 때마다 마음이 만들고 싶은 빵을 구워내고 있습니다. 

팥 삶은 이야기를 한 것처럼 오늘 빵은 단팥빵입니다. 달달한 단팥빵과는 거리가 있는 콘셉트이지만 그래도 나름 대로의 규칙은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르방(levain)으로 10시간 이상 발효시킨다.

둘째. 설탕이나 이스트를 넣지 않고, 통밀가루와 소금, 물만 넣는다.


실은 이 두 번째 기준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흔들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겠네요. 상업용 이스트 대신에 천연 베이킹 소다를 넣기 시작했고, 설탕 대신에 메이플 시럽을 넣고 있습니다. “빵을 먼저 시작한 선배가 통밀가루와 발효종만 고집하면 좌절하기 쉬워요”라는 이야기를 해준지 6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딸아이의 “아빠도 이렇게 부드럽고 달달한 빵으로 해줄 수 있어?”라는 요구는, 저의 주 고객인 가족들에게만큼은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매번 정성껏 발효시키고 맛있게 굽는다고 하기는 해도, 그건 순전히 저의 마음뿐이지 결과물은 시큼하고 딱딱한 서민 빵만 만들어 놓는 저에게  딸아이가 영 눈길을 주지 않으니 아빠도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과감히 선택을 했어요. 천연 베이킹 소다와 메일플 시럽을 준비하기로 말이죠. 결과는 어떨지 아시겠지요? 딸아이는 방과 후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릴 수 있게 “아빠 맛있게 구워주세요, 선생님들하고 오늘 점심 같이 먹을 거예요” 방학중에도 학교에 나가는 딸아이는 늘 도시락을 싸가지고 갑니다. 스타일을 바꾼 아빠의 빵을 선생님과 나누어 먹겠다고 하니 제 마음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시럽을 듬뿍 넣고, 팥도 삶아서 팥빵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겨울 아침 단팥빵을 굽는 마음은 새날을 맞이하는 뭔가 설레는 톡톡 마음이 튀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오늘 아침에는 옆집 누님 댁에 한 덩어리를 가져다 드렸습니다. 


팥빵을 나누어 드신 선생님께 문자가 왔습니다. 

“아버님 커피도 내리시고, 빵도 이렇게 맛있게 하시니, 남은 것은 카페 같아요”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은 말이 있다고, 칭찬을 들으면 뭔가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을 보니 저는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아빠 같습니다. 


오늘 아침 빵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잠시 살펴볼까요?

먼저 앉은뱅이 통밀가루 250g, 밀기울 30g, 양파가루 30g, 물 대신 양파액 100g, 이스트 대신 베이킹 소다 6g, 메이플 시럽 10g, 코코넛 오일 5g, 소금 4g, 천연발효종 150g, 직접 삶은 단팥 50g입니다. 

요즘은 겨울 빵과 여름 빵 만들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다음번에 자세히 써보고 싶은 내용이기도 하고, 마치 겨울 집과 여름 집에서의 살림살이가 다른 것처럼 계절에 따른 빵 만들기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여름 빵은 딱딱하고 발효종 향이 너무 강해서 “빵 어때요?”라고 물으면 “역시 건강한 빵이야”라고 ‘우문현답’을 주던 동네 식구들, 그나마 외국에서 살다온 번역가 형님 내외가 즐기는 정도였는데, 모두가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겨울 빵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동네 식구들 답변도 눈매도 부드러워지고 있습니다. “와 이거 변했는데, 오늘 빵은 확실히 맛있다.” 그동안 너무 시큼한 빵과 딱딱한 빵을 먹었다는 표현을 이렇게들 하더군요. 알라딘 식구들과 같이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늘은 사진으로만 빵을 나누어야겠네요.   


건축가로서 뿐만 아니라 생활하는 개인으로서 관심을 갖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향과 공간의 관계, 생활의 반경에 대한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만의 정체성이 있고 그들의 기질에 따라 외향과 말투, 행동, 사회적 활동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제 경우를 돌아보면 내면의 바람과 욕구가 시간을 두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건축을 업으로 일하는 것 외에도, 빵을 굽고, 인근 동네에서 도예 수업을 받고,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여러 가지 행동의 패턴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욕구라고 해도 다른 방향의 행동(빵을 만들어 먹는 일과 빵을 사 먹는 일)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저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기질’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번거롭게 시간을 내어 빵을 굽고, 그릇을 빚고, 음식을 만드는 중에 알아낸 것이 있다고 할까요? 누구에게나 어떤 환경이 주어지면 새로운 변화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은 제 건축활동에서 이 부분은 공간을 해석하고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이기도 하고요. 


제가 만나온 건축주들은 자라온 배경에 차이가 있고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듯 하지만 모두 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어진 집 중에 같은 모양의 집(여기서는 편의상 모든 종류의 건물을 ‘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은 없습니다. ‘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집’은 ‘소박한 바램의 장소’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어쩌면 ‘살고는 있지만 살고 싶은 곳이 아닌 현재의 집’과는 ‘다른 집’을 찾아 떠나는 분들을 늘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장소(집, 빵 굽는 곳, 주방, 서재, 목공실, 공방, 차 마시는 곳, 음악실)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가족, 부부, 자신)의 내면을 감싸줄, 표현할 장소를 찾아내고, 1:1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해 전에 일 년 동안 특별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곁에 두고 참고하는 책중에 ‘Homoeopathy’ (동종요법) 관련 서적들이 있습니다. ‘동종요법’은 같은 종류로 병을 치료한다는 ‘대체의학’의 일종입니다. 의사도 아닌 제가 동종요법의 책을 보는 이유는 ‘마음은 몸으로 표현’ 하기 위해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만성질환과 관련이 있고, 성격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축의 장소’ 중에도 어떤(동종) 공간들은 생명을 치유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나게 하는 분위기, 제가 즐겨 쓰는 표현인 ‘생활하는 집’에 대한 느낌과 장소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빵 이야기를 하다가 뚱딴지 같은 소리처럼 어려운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고, 이상한 소리 일수도 있지만 공간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내는 일은 제가 경험을 하고 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찾아 길을 떠나고, 목공실에서 나무를 다듬고, 커피 향과 차향을 즐길 곳을 찾아가는 일 역시 그러한 행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빵을 굽는 그럴싸한 장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침 일찍 밀가루를 치대 빵을 빚고, 빨간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다양한 모양과 맛의 서민 빵을 궁리하는 그런 장소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궁리’하는 장소는 어떤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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