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오십보(五十步)의 풍경

by 빵굽는 건축가

겨울비가 오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남향으로 긴 창을 둔 온실 유리에 점점이 달린 빗방울이 딱 자기만 한 무게로 아래를 향해 내려갑니다. 겨울엔 눈이 오는 날이 많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군요. 창에 맺힌 물방울의 움직임도 언젠가는 새로운 건축 공간의 밑바탕으로 쓰일 수 있겠지요.


비가 오니 동네 울력(마을 청소) 모임은 쉬고, 대신 집에 있는 달달한 먹거리를 들고 사랑방으로 모이자고 합니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너비 4미터의 흙길을 따라 내려가는 중간에 동네 사랑방이 있습니다. 건물 한 채를 두고 뜨락, 커뮤니티, 회관으로 제각각 부르다 몇 해전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일 뒷집인 우리 집에서 걸음걸이로 200미터 떨어진 윗동네에는 면에서 지원하여 만든 법에서 보장하는 의미의 '모산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건축법령에도 건축물의 용도 중에'마을회관'이 있는 것을 보면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마을에는 한 개씩 '회관'을 두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 회관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짓고 여기서 생일잔치, 회의, 술자리, 밥 모임, 영화모임, 차모임, 탁구 모임 장소로 쓰고 있습니다. 조금 세련된 표현으로 '커뮤니티'의 성격이 다분한데 도무지 그 소리가 입에 붙지 않는지 몇 번 부르다 지금은 '회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실은 윗동네에 사는 어르신들이 아랫동네에도 회관이 있다고 하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뜨락'이란 이름도 붙여보았는데 안되더군요. 윗동네엔 들리지 않게 우리들끼리 조그마한 소리로 "회관에 모여라" 말하고 있습니다.


회관으로 가는 길에 옆집 누님도 새로 만든 빵을 들고 걸어 나옵니다. 저도 제가 구운 빵을 들고 있는데 아무래도 모양이 비교가 되더군요. 모이기로 한 오전 10시를 앞뒤로 이웃들이 모여듭니다. 집에서 내린 커피와 동네 아줌마들이 담근 보리수청, 직접 구운 빵과 제과점 빵, 과일이 한상입니다. 차려진 음식수만큼 마음도 풍성하게 설레는 아침입니다. 이런날의 풍경을 글로 풀어보면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뭐,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서 수다 떨고, 먹다가 흘리기도 하고, 점잖은 모습 대신 우스개 소리를 하고, 어찌 지내는지도 알게 되는 그런 거"라고 써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주 구운 빵을 맛본 3호 집 형님이 “신맛을 줄이고 더 부드러운 발효빵을 만들어 줄 수는 없냐”는 제안에 이번 빵에는 상업용 이스트를 살짝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해오던 24시간 저온 숙성 대신 상온에서 3시간을 숙성시켜 구워냈습니다.


옆집 민교 아빠가 한입을 베어 먹고는 “아 이거 음.. 빵 실력이 퇴보한 것 같아"라고 눈치 없이 평소답게 솔직한 평가를 합니다. ‘퇴보’의 말을 듣고 보니, 발효빵을 외치던 나의 길을 계속 갔어야 하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 소리에 의기소침하거나 그럴 사이는 아니기에 “설탕이랑 우유도 넣을걸 그랬나? ”라며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나름 구운다고 구운 빵맛 품평을 받고 보니 제 마음이 조금 그렇기는 하더군요.


제과점 빵과 옆집 누님 빵은 모두 사라지고 제가 들고 온 빵은 몇조각 남았습니다. 소풍 가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기억도 났습니다. 친구들이 싸온 맛있는 반찬은 팔리고 맛없어 보이는 내 반찬은 내가 다 먹었던 것처럼, 남은 빵은 동네 아줌마가 만든 아로니아 잼을 듬뿍 발라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어찌 되었든 저의 길, 발효빵만 구우려고 합니다. 우유와 계란, 버터가 들어간 빵들과 겨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겠어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는 과정도 그렇고, 변화하는 입맛을 맞추느라 새벽부터 빵을 구워내고, 밤늦도록 반죽을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빵 선생님들도 고민이 많겠지요? 생업에 계신 분들에게, 멋지고 수고하신다고 엄치척을 보내드립니다.


시내에서 1년 넘게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3호 형님에게 요즘 읽는 책은 어떤 것인지 물어봅니다. 저도 독서모임을 하고는 싶지만 출장과 회사 업무로 시간이 일정치 않아 형님의 활동을 귀동냥으로 듣고 책소개만 받습니다.


“형님 11월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은 뭐래요?”


"음 <선량한 차별>이라고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는 차별에 대한 책인데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남아있는 차별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되었어. 12월 모임에선 시집을 몇 권 읽고 자기의 시를 나누자고 하네, 요즘은 시를 읽고 있어"


"그래요? 노르웨이의 정원사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의 시가 있는데 가져다 드릴께요"


“난 너무 관념적인 건 익숙지 않은데 혹시 그런 거 아냐?”라면서도 형님의 머리색처럼 밝은 안경테 너머 부드러운 눈짓으로 책을 반겨합니다.


우리 집에서 남쪽으로 오십보 떨어진 건너집에 살고 있는 3호 형님네는 불빛으로 인기척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입니다. 남향을 바라보는 3호 형님댁과 우리 집 사이에는 4호 형님댁이 있고, 동향으로 자리한 4호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3호 형님댁의 별채와 후원이 나옵니다. 종종 3호 후원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우리 집 마당은 굉장히 크게 보입니다. 울타리가 없는 우리 동네의 모호한 경계 때문일 것입니다. 굳이 경계를 따지자면 각 집이 심은 자작나무, 단풍, 자두, 대추들이 집과 집 사이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 자리한 4호 형님댁 마당은 고양이들과 아이들의 놀이터로 자주 쓰입니다. 어른들이 맥주를 마시는 계절이 되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3호와 5호 사이에서 중정(中庭)처럼 사랑채로 이어진 마당으로 쓰이는 셈이죠.


이오 정원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당은 지붕 없는 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판테온 성당의 돔 천정이 천상의 세계를 표현했다면, 우리 동네 마당은 집과 집으로 둘러 쌓이고 산이 품은 넓은 하늘을 둥근 천정 삼아 살고 있습니다. 오십보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정원에는 추억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습니다.


아침 브런치 모임을 마치고 까먹기 전에 책을 찾아냅니다. "형님 <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여기 있어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챙이 있는 정원용 모자를 쓴 채 앞을 응시하는 '하우게' 사진이 표지로 된 손안에 들어오는 하얀 책을 건네줍니다. 형님은 책을 받으며 "제목 좋은데, 잘 읽을게”


시집을 건네주고 발길을 돌려 오십 걸음을 걸어 우리 집 온실에 도착합니다. 시집을 받은 형님 모습을 보니 ‘퇴보한 빵’ 맛을 만회한 듯한 기분도 들고, '하우게'선생의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을 받을 거란 기대감도 생깁니다. 챙있는 모자를 쓰고 쭈그려 앉아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어 본 사람이라면 하우게의 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께 분명하거든요.


마을, 커뮤니티, 공동체, 이웃 같은 단어들은 요즘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몇 년을 살아보고 나서야 그 단어들이 주는 분위기, 장소의 쓰임, 걸어가는 길에 담긴 의미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엔 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 깍지벌레가 많이 생겨서 따지 않은 감나무의 감들이 그대로 달려있습니다. 탁구공 보다 조금 큰 붉은 감들 덕분에 새들 구경도 한창입니다. 모과 열매 한 바구니는 온실에서 노란향을 내어주고, 우리 집 깜선 생(고양이)은 모과향에 취한듯이 일요일의 온실에서 따뜻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 2일에)


왼쪽 상단 저의 발효빵이 보이나요? 달달하고 부드러운 오른쪽 중간에 있는 빵들에게 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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