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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09.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9. 배달사고



    막장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막장드라마를 즐겨 볼까. 이런 궁금증이 든 건 지난 주말에 한 젊은 여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몇 번 수업을 같이 듣는 동안 내가 호감을 갖게 된 여성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난 이후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지방에 있는 시댁에서 겪은 사연들은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얼추 사이즈가 맞았다. 

    이런 이야기는 하는 입장도 그렇지만 듣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청자에게 원하는 것을 잘 짚어내 그것을 들어주어야지 엉뚱한 멘트를 했다가는 말하는 사람도 기분이 상하고 듣는 사람도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여성의 경우는 단지 들어주기를 바라는 정도라고 판단해 이야기를 그냥저냥 들어 넘기다가 가끔 “나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 알 것 같아. 내가 아는 고향사람들도 그렇거든. 원초적인 기질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나 할까.” 하는 식으로 반응했다. 

    사실 그녀가 일상적으로 들으며 산다는 말들의 독성은 꽤 강했다. 박경리나 박완서 선생의 옛날 소설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만큼 정제되지 않은, 직접적인 말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가 했던 말들을 되새기다가 나는 자꾸만 키득키득 혼자 웃고 말았다. 그렇게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웃음으로나 기억하다니. 

    시댁식구들의 독성과 독기는 그녀가 내 앞에서 말하는 순간에는 결코 나타난 적이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을 느끼지도 않았고 경험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는 이렇게 산다는 식으로 자기 자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에피소드의 내용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배달사고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던졌다는 악의적인 말들은 분명히 나에게 전달이 되었는데 단어와 문장만 내게 도착했을 뿐 악의의 행방은 묘연한 것이다. 그녀라는 필터가 그것을 다 걸러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그렇다면 내게 오는 과정에서 누락된 그것들은 어디로 새어나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배회하고 있을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어떤 사람의 말은 문장 자체로는 별다른 악의가 없는데 듣는 사람에게 도착하는 순간 시퍼렇게 날이 서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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