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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10.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13. 탁상시계



    며칠 전 지방으로 강의를 다녀와 몹시 피곤해서 일찍 잠든 날 밤 1시경에 어머니가 불현듯 전화를 걸어와 잠든 나를 깨워놓고 이렇게 물었다.

    “거실 서랍 안에 든 탁상시계 네가 가져갔니?”

    그 질문 하나에 아차 싶으면서도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 그 얼마 전에 어머니는 여수 막내딸 집에 가서 며칠 묵었는데 계속 비어 있는 집이 불안해 나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고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서랍에서 사용을 안 하는 것 같은 시계를 발견했고 마침 필요하기도 해서 내 집으로 가져왔는데 깜빡하고 말을 안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우연한 계기로 그 시계가 없어졌음을 알고 초저녁부터 내내 집안을 뒤졌고 한밤중에 이르러서야 내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추리를 해낸 것이다. 한밤중이다 보니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꽤 망설였을 것이다. 확인을 다음 날로 미루면 자신이 잠을 못 잘 것 같고(찾던 것을 못 찾았으니까) 지금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면 딸이 잠을 못 잔다. 둘 다 예민하기에 한 번 잠에서 깨면 다시는 잠들기 어렵다는 것을 서로 너무 잘 아는 상태인 것이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답게 당장 전화 거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자다가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연세가 적지 않은 데다 육식을 전혀 안 해서 그런지 최근 들어 퍽 물기가 말라가고 있다고 느꼈고 남아 있는 날은 길면 5년, 짧으면 3년 정도가 아닐까. 올 초에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당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사라진 탁상시계에 대한 흥분된 설명을 듣고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런 해프닝에 적응이 되어 “나는 깊이 잠들었었다.”와 “나는 피곤했다.”를 복창한 다음 “필요하다면 내일 직접 가서 시계를 돌려주겠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노인에게 한 것치고는 지나치게 인정머리 없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이것이 내 마음속에 무거운 죄의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계를 당장 가져오라는 명령이 없었기에 나는 어머니한테 가지 않고 미적거렸다.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가 더 흘러 어머니에게 갔더니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가 티브이를 슬그머니 끄고는 얼마 전에 새로 개통한 당신의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 뒷모습이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냥 어머니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왜 티브이 안 봐?”하고 물었고 어머니는 “재미있는 게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때의 어머니 목소리, 어감에서 나는 우리 사이의 갈등이 모두 해결되었음을 알았고 사진 한 컷을 몰래 찍은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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