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랍정리
이사 오면서 안 가져왔어야 할 서랍장 하나를 부려놓았는데 드디어 정리가 끝났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었다. 그냥 통째로 길에다 내놓으니 이렇게 간단히 단념이 되는 걸 뭘 그리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다. 서랍에 딸려온 못난 물건들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리면서 사람이든 관계든 감정이든 물건이든 애착심을 상실시킨다는 점에서 자연사自然死가 가장 원활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풍기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맡으면서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남는 뒤끝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스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