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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11.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15. 어머니 찾기



    어제 점심에 최근 소설집을 낸 후배를 만나 밥을 먹었다. 다른 소설가와 셋이 어울린 자리였다. 아무래도 자리가 책을 낸 젊은 후배를 축하하는 성격인 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꽃다발을 사들고 갔다. 마음이 깨끗하고 순한 친구라 앞으로도 일이 술술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을 달리 전할 방법이 없다 보니 꽃가게까지 기웃거리게 된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지난주에 겪었던 명절이 도마 위에 올랐고 부질없지만 어디에서라도 풀어내야 할 감정들에 대한 토로와 교환이 이어졌다. 화제는 돌고 돌아 책을 낸 후배가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왜 전화했느냐는 식으로 화만 낸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 요즘은 거의 통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편한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대체로 말을 막 던지는 편이었지만 그 대목에 이르러서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억눌렀던 말이 고스란히 돌아와 자꾸만 나를 자극하는 것을 느꼈고 하릴없이 굴복한 나는 그 이야기를 글로라도 풀어내기 위해 몇 달째 쓰고 있던 글을 덮고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게 된 것이었다. 

    책을 낸 후배와 밥을 먹기 위한 당연한 절차로써 나는 지난주에 그 책을 부랴부랴 다 읽었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중단편들을 뿌듯한 마음으로 소화했는데 책에 대한 비평은 접어두고 내가 포착한, 어쩌면 작품 외적이라고 해야 할 단 하나의 뉘앙스가 그 후배에 대한 주요 관심사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이 후배가 끊임없이 동성의 괜찮은 여인들에게 매료되어 그녀들의 주변을 맴돌면서 뭔가를 찾으려 하고 거기서 부딪친 관계의 꿈, 혹은 실패담을 소설로 옮겨 적는 것 같다는 심증이었다. 그것은 왠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그 무엇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흥미가 생기고 관심도 갔다. 

    그런 상황에서 후배는 살아 있는 어머니와의 슬픈 두절을 토로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관해 서슴없이 말을 던지는 나를 입 다물게 하는, 모성에 대해 열렬하지만 분명치 않은 그 어떤 지향성. 

    오늘 아침 나는 어제의 에피소드에서 ‘어머니 찾기’라는 단어를 발굴해 손에 쥐고 있다. 두절된 어머니가 그리운데도 그립다는 말조차 허용되지 않아 슬프고 화가 나는 현실. 어떻게든 그 어머니 품으로 파고들어 어머니를 맛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으니 엉뚱한 세상 여인들에게로 마음은 한량없이 뻗어만 가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남성 판타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버전이 딸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바로 증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찾는 그 어머니가 되기 위해 터무니없는 곳으로 뛰어들어 인생을 허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직 목마름이 남아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다운 어머니에 대한 허기와 끝내 소진되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

    딸의 엄마들은 자주 토라지거나 언제나 토라져 있다. 그 후배의 어머니도 그렇고 나의 어머니도 그런 식이다. 어떻게든 진정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문밖에서 어머니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딸이 어머니의 프레임 안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처럼 뒤엉켜야 하지만 그 안이 얼마나 협소하고 숨 막히는 공간인지 너무 잘 알기에 감히 엄두 내지 못한 채 문 밖에 서서 어머니의 동태만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진실로 몸을 던진다고 해서 내가 찾는, 성스러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스러움이 어머니라면 반드시 갖추고 살아야 할 오리지널 한 모습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머니는 그냥 나의 어머니, 끝없이 화를 내면서 딸을 밀어내고 또 끌어당기기를 반복하는 그 어머니인 것이며 내가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바라보아주는 그 순간에만 출현하는 그 어떤 형상일 뿐이다. 또 내가 후배에게 하고 싶었던 조언이나 말들과 우리들의 어머니는 기실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니 나는 이토록 슬프게 되돌아온 오늘 아침의 말들을 조속히 돌려보내고 내가 하려던 것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부질없는 이 말들을 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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