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상순 Mar 12.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16. 조카의 할머니



    초등 5학년 조카가 있다. 마음속으로 나는 이 애를 조캐라고 부른다. 조캐가 어디서 연원한 말인지는 나만의 비밀이다. 

    이 녀석은 나를 보통 귀찮게 하는 게 아닌데다가 어떻게든 유용하게(!) 써먹으려고만 하고 나는 또 당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곡예를 하며 피해 다닌다. 이 조캐가 어제 전화해서 하는 말, "우리 교과서에 직업을 소개하는 게 있는데 고모가 와서 작가는 어떤 직업인지 좀 말해주면 안 될까?" 하면서 강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식의 되도 않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는 단번에 위기상황임을 감지하였고   

    "어머, 그걸 내가 왜?"  

    "니가 먼데 그러나? 반장이면 그런 일도 해야 하나?"

    "네가 선생이야?"   

    하면서 발뺌탄을 다다다닥 쏘아댔다. 그러고는 나 바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나쁜 성격 중 하나는 뻘밭임을 알면서도 가끔 나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는다는 점. 전화를 끊고 나서 내 일을 하는데 차츰 마음이 안 좋아지고 그러다가 불시에 나도 모르게 일을 멈추고 '그렇담 초딩들 앞에서는 어떤 버전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하나?' 나도 모르게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가는 데는 아마 며칠 전 있었던 일이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관에 함께 가려고 조캐를 데리러 간 김에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맡긴 딸기 화분이 어떻게 자라고 있나 확인하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봄에 꽃집을 지나가다가 딸기 모종 두 포기를 사서 화분에 심었다. 내가 사는 집 베란다는 남향이어서 볕이 잘 드는 데도 녀석들은 이상하게 잘 안 컸다. 그러던 참에 우연히 모종을 샀던 가게를 지나가다가 안 팔린 형제 모종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집 딸기는 별로 자라지도 않고 잎도 안으로 말리며 시들거리는데 그 애들은 덤불이 창창하게 뻗어나가고 꽃이 피고 지던 참이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응급처방으로 어머니에게 화분을 맡겼다. 그런데 내 손에서는 그렇게 시들거리던 녀석들이 어머니의 보호 아래서는 잘도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미술관까지는 좀 먼 거리였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딸기 모종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행여나 모종이 싫어할까봐 수도물을 정성스레 받아뒀다가 이틀마다 조금씩 나눠 주었는데 "내가 할머니보다 못한 게 뭐냐고?" 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랬더니 조캐 왈, "할머니는 모종한테 말도 걸어." 했고 나는 즉각 "그거 나도 한다"고 받아쳤다. 그런데 조캐가 다시 "할머니는 진짜 말 걸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건 왠지 나에 대한 신랄한 한 방인 것만 같아서 나는 "내가 그래도 할머니보다 인간성이 낫지 않냐?" 하면서 변명 같은 비명을 질렀는데 조캐가 슬며시 한 마디를 더 내 심장 속으로 박아 넣었다. 

    "할머니는 툭 하면 간섭하면서 사납게 소리 지르지만 속은 좋은데, 고모는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은 별로야." 

    흡!...그날부터 지금까지 나에 관해 비관 같은 반성을 했고 어제 조캐로부터 직업탐방을 와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고민이 깊다. 내가 식물에게 믿음을 다해 진심으로 말을 걸기 위해서는 거의 종교를 바꾸는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짐작해 보면 한숨만 나온다. 

    어쨌거나 이 일을 통해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나와의 인연을 끝내고 조캐의 할머니로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사랑이나 인정 같은 것은 나 같은 합리주의자에게서는 배겨내기 힘들지 않나 하는 것! 조캐의 말을 통해 짐작해 보면 그것을 가장 정확히 알아보는 것 역시 합리적 어른이라기보다는 꽃이나 나무, 식물, 동물, 혹은 어린아이와 같은 비합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동안 내 손에서 죽어버린 식물과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미워졌다.  

    그 애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얘들아, 너희가 내 손바닥 위에서 죽는 순간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아니?”

    그러자 세상의 모든 나무들, 식물들이 화를 내며 몰려오는 것 같다. 우리는 목숨을 잃었는데 너는 고작 상처를 말하느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나만의 문제를 어른 공통의 문제로 일반화시켜버리면서 또 한번 발뺌하는 것 같아 역시 마음이 안 좋다. 이래저래 말을 한다는 자체가 업을 짓는 일인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여기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