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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16.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20. 아무거나



    며칠 전 동네에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가다가 작은 도서관 간판을 발견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2층으로 직접 올라가 봤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겨우겨우 운영해 가는 중이어서 협소한 서가마저 헐렁하게 비어 있었다. 그 도서관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지향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15분가량 안을 둘러보고 몇 마디 물어도 본 다음 집으로 돌아와 기증할 도서를 한 가방 챙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책이 든 가방은 그대로 우리 집 현관 입구에 놓여 있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지만 “책을 기증해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담당자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우리는 아무거나 책꽂이에 꽂지는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헐렁하고 적당하게 비뚤어진 동그라미여서 아무 때나 대충대충 엮이고 뭉칠 수 있는 집합인데 담당자의 ‘우리’는 비타협적이고 손색없이 명료한 동그라미 같았다. 딴은 그녀의 말이 더 사실적인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서관 서가에 꽂히는 책 역시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다. 여기서 걸러지고 배제된 책은 서가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지 못한 채 조용히 버려진다. 서가를 다 채우지도 못한 가난한 도서관의 담당자가 책을 기증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왜 그런 대답을 앞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주저하게 되었다. 그 ‘아무거나’가 어떤 ‘아무거나’ 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져간 책들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몇 권의 내 책들이 그 아무거나에 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책은 밥만큼이나 무조건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지질하게도 내가 기증하는 내 책 속에 끼어 있는 내가 쓴 책이 어떤 선택 속에서 배제되는 꼴은 못 보겠다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가. 

    어쨌거나 도서기증이 목표(기왕에 챙겨놓았으니)인 나는 지금 명분을 찾고 있다. 내 안의 생각이 그럴듯하게 수습될 수 있다면 속임수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어떻게든 동그라미가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결론을 봉합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기증하는 내 책 속에 끼어 있는 내가 쓴 책이 어떤 선택 속에서 배제되더라도 그러려니 하자는 결심이 서면 현관에 방치되어 있는 가방을 집어 들게 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이토록 허술한 동그라미라는 걸 좀 자랑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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