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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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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거짓말



    삶이 무한의 갈래 길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거짓말의 가짓수도 무한하리라. 특히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은 대개가 거짓말로 지각된다. 그것이 유효 적절한 하나의 길로써 인정받을 때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의 무한궤도나 거짓말 역시 최초에는 언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느 순간 이 둘은 서로 같은 것이 되고 말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거짓말, 그것도 아이가 어른에 맞서기 위해 하는 어떤 거짓말을 흥미로워하는 편인데 사람의 성격적 가능성을 그처럼 잘 드러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거짓말은 무조건 장려되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놓고 말해 버리는 순간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할는지 모른다. 가만히 있는 아이더러 “넌 왜 거짓말을 안 하니?” “제발 나에게 거짓말 좀 해봐.”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나’라는 어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있는 거라는 낌새를 느낄 때는 조용히 길을 비켜주거나 그 아이가 자기가 시작한 거짓말을 어떻게 굴려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사채처럼 비정상적으로 이자가 불어나 순식간에 규모가 커지고 관리의 범위도 확장될 터인데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거짓말에게 언제, 어떤 타이밍에 항복을 선언하게 될 것인가. 이런 걸 지켜보는 것이 유쾌한 일이면 안 되는 것일까. 조마조마하고 걱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몇 개의 인격으로 분열시키고 그 각각의 인격과 진지한 소꿉놀이를 전개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감당하는 과정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그것을 유지시키고 키워나가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거짓말이 자아에 눈 뜨기 시작할 시기에 가장 활성화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더 단적으로는 이 세계에서 거짓말을 통하지 않고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로 나아갈 경로를 발견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도 있다. 거짓말이 아닌 길이 고속도로이고 국도이고 신작로라면 이러한 길과 길 사이에서 어떤 새로운 구멍을 발견해 그곳으로 한 번 걸어가 보기로 작정해 보는 것. 흔히 말해 문리가 트이지 않고서는 이러한 세계를 감당하는 것도 경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너무 깊이 관여해 아이의 자율성을 저지하고 어른의 논리를 적용해 아이가 설정한 가상의 세계를 샅샅이 거덜 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기껏 자신의 아이가 고속도로나 신작로라는 잘 닦인 길로만 걸어가 고생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말이다.   

    아이가 뭘 모르는 상태에서 구축한 가상의 세계는 곧 파산이 나겠지만 그러한 파산과 실패야말로 아이의 성장에 있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작고 하찮은 박테리아에 불과했던 생명이 이러한 끝없는 자기 분열의 과정 없이 어떻게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것은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는 가르침을 통해서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금기를 해제하면 삶은 윤곽을 잃고 배경 너머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거짓말은 결국 무엇 무엇은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에 대한 자기만의 대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요행히 그 사람만의 고유한 대처법이 시스템에서 승인이 되고 가치를 인정받으면 세상은 그에게 자리를 주고 이름을 부여한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이중의 전략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거짓말을 통해서만 거짓말이 금지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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