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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Apr 02.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23. 간섭의 논리



    어제 비슷한 연배의 부부와 만나고 온 뒤로 마음에 부대끼는 것이 생겼다. 박사학위를 위해 오래 외국생활을 하다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공부한 것과 생계문제를 연계해 요가학원을 차린 경우였다. 부부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가 잘 안 가는 모양이었고 실제로 최근 아끼는 젊은이에게 문제제기를 했다가 그를 잃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으나 끼어들기에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결국 대충 그러냐며 맞장구만 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이런 나의 태도가 과연 성실한 것인지, 이것이 그분들에 대한 진정한 예의인가 하는 생각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부부가 젊은이의 라이프스타일에 간섭하다가 사달이 났는데 나는 또 이 부부의 사업 방법에 간섭해야만 할까.


    우리 세대만 해도 정답은 하나였고 정해져 있었기에 자녀나 제자들, 혹은 젊은이들에게 간섭을 통해서라도 개입해야 할 명분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타인에 대한 간섭이 사랑이고 애정이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답이 무력해졌고 수만 가지로 해체되어 버린 참이고 보면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 관점 그 자체에서 옳고 그름이라든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분류해 내기는 어렵게 되었다. 결국 남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남는 셈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남의 라이프스타일을 문제 삼으려 한다면 자신의 시각으로 타인을 견인하려고 한다는 누명까지 감수해야 한다. 내 눈에는 부부가 지금 딱 그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스스로 갈피를 잡을 것이므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그와 같은 번민을 어쩌지 못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확언할 만한 빌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지식을 버려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문제이고 상대로 하여금 내려놓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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