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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Apr 16.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27. 달걀 한 알에 백만 원



    몇 년 전, 꼬맹이들과 파주시의 우거진 들판을 돌아다니다가 잘 정돈된 텃밭에서 예사롭지 않은 동물 뼈를 발견했다. 생선뼈처럼 생겼으나 생선뼈는 아니었고 크고 작은 뼈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진 것 같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지나가던 농부에게 물었더니 능구렁이이며 주변 정황으로 보아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걸려서 희생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한참 말없이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능구렁이가 틀림없다면 내가 여태 실물로 본 뱀 중에서는 몸집이 가장 크고 웅장할 것 같았다. 뱀 중의 뱀을 사집蛇執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 건드려서도 안 되고 건드릴 수도 없는 그 영물이 고작 사소하고 하찮은 그물망에 걸려 유명을 달리하다니.

    

    이후 레지던스 가 있던 곳에서 능구렁이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토종닭에게 능구렁이만 잡아먹이는 양계장이 있고 그 닭이 낳은 달걀은 한 알에 백만 원에 팔린다는 것이었다. 말을 전한 이는 몸에 좋다고 그런 것만 찾는 부자 놈들을 욕했다. 내가 이전에 보았던 능구렁이 뼈를 떠올리며 우울해하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능구렁이를 잡는 인간들은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능구렁이가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면 뱀을 잡는 사람부터 문제를 삼아야 하지 않나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백만 원이라는 돈뭉치가 너무 크고 유혹적이기에 전문적인 땅꾼들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므로 우선 부자들부터 생각을 바꿔 이와 같은 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라 끼어들기는 어색했으나 몇몇이 나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 젊은이는 이런 말을 했다.  


    “뱀과 감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뱀 굴을 찾아서 그것을 연장으로 파내고 부수고 유인하고 마침내 손아귀에 쥐고 그 살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자기 자루에 집어넣는 사람들이 그짓을 하지 않으면 될 것 같은데요, 부자들이 몸에 좋은 달걀 먹고 싶다고 직접 능구렁이를 잡아 닭한테 먹일 일은 없을 것이고 보면.”


    분위기는 점점 싸해졌고 누군가 화를 내며 가버리는 바람에 논쟁은 유야무야되었지만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속에서 만나게 되는 고루한 생각은 터무니없는 인과론이다.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부모에게 맞고 자란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식을 또 때리게 된다든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난 뒤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은 대개 다 변명이라고 주장한다.


  능구렁이는 능구렁이다. 능구렁이는 능구렁이 거처에서 일평생 능구렁이로 살아가면 되고 우리는 각자의 거처에서 우리의 삶을 살면 된다. 만약 누군가 운 좋게도 뱀과 감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능력을 타고 났다면 그것이 뱀을 없애는데 쓰이기보다는 뱀을 이해하는데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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