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빨래집게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희한한 몸을 보았다. 육체의 대부분이 쪼그라들고 내려앉은 것으로 보면 분명히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몸 일부는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한참을 더 살아야 할 것 같았으므로 할머니라고 아주 단정 지어 부르는 게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몸 중에서 할머니가 되지 않은 부분이 얼굴이나 가슴 같은 곳이라면 크게 어색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인위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런 일쯤이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할머니의 몸에서 늙지 않고 온전한 부분은 어깨와 등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바느질로 꿰맨 자국이라도 있나 살펴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든 보편적인 각도에서 그 몸을 이해해 보려는 내 나름의 안간힘이었다. 한참 훔쳐보며 탐색하고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것이 있다. 살집이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할머니 몸의 다른 부분과 달리 어깨와 등에는 뭔가 붙어 있었다. 내가 거기에 아무리 다른 이름, 세상에 없는 단어를 갖다 붙이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살, 혹은 지방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랬다. 할머니 몸 중에서 어깨와 등이 각별히 눈에 띈 이유는 누군가 온몸의 살을 다 빼앗아갔지만, 혹은 살면서 살이라는 연료를 다 태워서 사용했지만 거기만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둔 상태였다. 탐이 안 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넘볼 수가 없었고 넘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부분...... 저와 같은 자존의 영역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이름은 무엇이며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공연히 그런 게 궁금해져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어깨는 든든하지만 유방과 엉덩이가 완전히 쪼그라들어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몸으로 할머니는 목욕탕 타일 위를 왔다 갔다 했다. 그이는 이 지상에 발붙이고 있지만 어깨는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커다란 빨래집게로 그 탐스러운 어깨를 꾹 집어 맡아놓은 것 같았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아무도 넘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끝내 그 할머니에게 말 한 번 걸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