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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된다는 것,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거봉 이야기

뻔한 일상, 나만의 브랜딩 #5

by TODD

“한 알의 포도”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혈병을 앓던 다섯 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한 살 때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아이는 결국 말기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고, 의사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게 해 주세요."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먹고 싶니?"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빠, 포도가 먹고 싶어."


하지만 계절은 한겨울. 포도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온 가게를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포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다카시마야 백화점 과일 매장을 찾은 그는 점원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포도가 있나요?"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대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박스 포장된 고급 거봉 포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선뜻 손을 뻗지 못했습니다. 가격표에는 무려 3만 엔(약 33만 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소녀의 치료비로 가진 돈이 바닥난 아버지는 망설이다가 간절한 마음으로 점원에게 부탁했습니다.


"지금 제게는 2천 엔밖에 없습니다. 한 알이라도 괜찮으니 포도를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점원은 조용히 거봉 한 송이를 꺼내 몇 알을 떼어 작은 상자에 담아 예쁘게 포장해 건넸습니다.


"자, 2천 엔입니다."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그 포도를 받아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거 봐, 네가 먹고 싶어 하던 포도야."


소녀는 마른 손으로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아빠, 정말 맛있어."


그리고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소녀의 장례를 마친 아버지는 담당 의사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소녀의 마지막 임종과 관련한 사연을 들은 의사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 이야기는 신문에 소개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 실화는 일본의 다카시마야 백화점과 한 점원의 이야기입니다.

1831년 창립한 다카시마야의 경영이념은 단순했습니다.


“언제나 사람 중심”


브랜드의 본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기업이 비전과 경영이념을 설정하는 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닙니다. 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며, 위기 속에서도 조직을 하나로 묶는 핵심 가이드라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언이 단순한 문구로만 존재한다면 브랜드의 힘은 결코 발휘되지 않습니다.


다카시마야 백화점 역시 오랜 기간 ‘명품 백화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서민들에게는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봉 한 알’ 이야기 하나로 브랜드의 이미지는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브랜드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글로벌 확장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다카시마야는 뉴욕에 지점을 설립하기 위해 미국의 유명 백화점과 협상 중이었는데, 이 감동적인 사연이 전해지자 협상은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 명의 점원이 브랜드 가치를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그 점원이 매뉴얼대로만 행동했다면, 그는 포도를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랜드의 ‘명품’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객을 선별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속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했습니다. 고객 중심의 가치를 실천한 그의 행동이야말로, 브랜드를 진정한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브랜드의 ‘자기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업의 직원들은 단순한 구성원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고객’이며, 가장 강력한 브랜드 대사(Ambassador)입니다. 직원이 브랜드의 가치를 체화하고 실천할 때, 소비자들도 이를 신뢰하게 됩니다.

많은 기업이 고객 중심 전략을 내세우지만, 정작 직원 만족도와 브랜드 경험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브랜드를 대표하는 직원의 태도와 행동입니다. 자신이 속한 브랜드를 만족하는 직원이야말로 브랜드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는 존재이며, 이는 곧 고객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브랜드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완성된다


다카시마야의 브랜드 정체성은 창업자의 경영이념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브랜드가 화려한 비전을 선포하고, 감동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고객들은 그것이 공허한 마케팅 메시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진정한 브랜드 가치는 직원의 태도와 작은 행동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업의 브랜드는 비전 선언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직원들의 행동 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다카시마야의 한 점원이 보여준 선택은 단순한 친절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사람 중심’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현실로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브랜드 이미지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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