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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정체성은 믿음이고, 믿음은 본질에서 온다.

뻔한 일상, 나만의 브랜딩 #6

by TODD
"생각을 먼저 지배하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그다음에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것이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


브랜드 전략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 교수는 오랫동안 브랜드의 이상적 지향점을 설명하는 용어로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2014년 출간한 Aaker on Branding에서는 *브랜드 비전(brand vision)*이라는 용어로 대체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지나치게 시각적 디자인과 관련된 개념으로 인식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브랜드의 본질적인 가치를 더욱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이 같은 용어 변경이 필요했다고 설명합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단순한 시각적 요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총합으로, 브랜드의 가치, 미션, 비전 등을 포함합니다.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브랜드 아이덴티티(BI, Brand Identity)라고 하면 브랜드 로고 디자인을 먼저 떠올립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검색하면 브랜드 전문 디자인 회사가 줄줄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디자인부터 변경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도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착각


2009년 4월, EBS에서 방송된 인간의 두 얼굴: 착각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 내면의 진실을 ‘착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하며,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결정되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관련해 생각해게 되는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버스 터미널 중앙 로비에서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국내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자였지만, 듀오로 활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실험은 이들이 동일한 연주를 하지만 조건을 달리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실험: 무명 연주자

연주자들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아무런 정보 제공 없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쳤습니다. 아무도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 브랜드 네임 부여

시간을 두고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연주자들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단, 이번에는 몇 가지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연주자들은 전문가 복장을 착용했고, 그들이 ‘해외 유학을 마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듀오, 조듀오’라고 소개하는 배너를 세웠습니다. 사실 이 ‘조듀오’라는 이름과 약력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했고,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보내는 관객도 많아졌습니다. 마치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 것입니다.


제작진이 연주를 감상한 시민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혹시 조듀오를 아세요?”
“책에서 본 것 같아요. 한 번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연주는 어떠셨나요?”
“아주 훌륭해요.”


동일한 연주를 들었던 시민들의 반응이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핵심적인 차이는 ‘조듀오’라는 브랜드 네임과 ‘해외 유학을 마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구체적인 정보가 추가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해외 유학’, ‘천재’라는 단어를 듣고, 이들의 연주가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실제 경험을 통해 강화되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소비자의 믿음


이 실험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구체적이고 매력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브랜드의 메시지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과 인식을 형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브랜드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퍼스널 브랜딩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그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할 때 강한 브랜드가 형성됩니다. 단순한 외적 이미지보다도 본인의 가치관, 철학, 행동이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그 브랜드에 신뢰를 갖습니다. 따라서 브랜드는 ‘보여지는 것’이 아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브랜드를 선택합니다. 따라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화려한 미사여구나 단순한 디자인 변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성 있는 정체성을 구축하고 유지할 때, 소비자는 브랜드를 신뢰하게 됩니다. 결국 브랜드의 정체성은 단순한 비주얼이 아닌 본질에서 나오는 믿음이며, 그 믿음이 지속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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