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을 찾는 마음에 대하여
겨울로 접어들수록 거리의 어둠은 짙어집니다. 해는 생각보다 일찍 저물고, 하루의 끝은 늘 예정보다 빠르게 찾아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계절이 되면 세상은 어둠 대신 더 많은 불빛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창가에 걸린 작은 전구, 카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조명, 거리마다 하나둘 밝혀지는 장식의 불빛들. 빛은 추위를 막아주지도, 시간을 늦춰주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불을 밝힙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계절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둠을 견디기 위해 불빛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불빛은 밝을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해가 긴 여름날에는 조명이 있어도 눈에 띄지 않듯, 빛은 언제나 어둠이 시작된 뒤에야 제 존재를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겨울은 그런 의미에서 불빛을 가장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절입니다. 어두워진 거리를 걷다 보면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창가의 불빛 하나에도 발걸음이 잠시 느려집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로 우리의 운명은 겨울의 과일나무와 닮았다. 저 가지들이 다시 푸르러지고 꽃을 피우리라 누가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그것을 안다."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봄의 푸르름을 상상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계절이 순환한다는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불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어둡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빛을 찾습니다. 그 불빛이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지금의 내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빛이 더 깊이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빛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게 되는 순간은 대개 마음이 조금 어두워졌을 때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밝은 쪽을 향해 걷습니다. 어두운 골목보다 불이 켜진 길을 택하고, 고요한 방 안에서도 굳이 조명 하나를 켜 둡니다.
불빛은 '여기에 누군가 있다'는 신호이고, '아직 괜찮다'는 확인이며,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라는 작은 위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빛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빛이 번지는 창가에 등을 기대고 앉습니다. 불빛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문제를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어릴 때 불빛은 그저 반짝이는 장식이었습니다. 트리의 전구, 거리의 네온,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색들.
젊을 때 불빛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의 상징이었습니다. 불빛이 있는 곳엔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고, 어쩌면 새로운 인연이 있을 것 같았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불빛의 의미는 점점 달라집니다. 이제 불빛은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보다 차분히 나를 받아주는 공간을 뜻하게 됩니다.
어느새 불빛은 더 이상 화려함이 아니라 안정의 신호가 됩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은 낮보다 훨씬 온화했고, 그 빛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는 바닥의 낙엽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동안 벤치에 앉았습니다. 찬 공기가 볼을 스쳤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가로등의 존재감은 이상하게 따뜻했습니다.
공원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그 자리를 지킵니다.
아무도 없어도 불을 끄지 않는 이유처럼, 그 불빛은 누군가를 부르기보다 그저 있어주기 위해 켜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할 때, 내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빛이 있으니 그림자도 생긴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날따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을 지날수록 조금씩 알게 됩니다. 주변에 불빛이 아무리 많아도 내 안이 완전히 꺼져 있다면 그 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 계절은 내 안의 작은 불씨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아직 놓지 않은 마음, 아직 포기하지 않은 감정, 아직 남아 있는 기대.
아주 약해서 바람만 불어도 꺼질 것 같은 불빛이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 그것을 지키는 일이 때로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밖의 빛은 수없이 많아도 내 안의 빛은 하나뿐이니까요.
겨울은 길고, 어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매년 그 계절을 통과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불빛 아래를 지나며 나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 불빛들이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내 안에 남아 있을 작은 온기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고.
추운 계절에 불빛을 찾는 마음은 약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으려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 마음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빛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쪽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