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물지 못하는 마음들에 대하여

떠남이 익숙해진 시대, 머무름이 남기는 따뜻한 온도

by TODD

토요일 오후의 공원은 조금 더 차가워졌습니다.

벤치 위에는 조금 전까지 앉았다 일어난 사람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 자리.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무른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습니다.


“요즘 직원들은 오래 남아 있지 않아. 1년, 길어야 2년. 일 좀 할만하면 다 떠나.”


그 친구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고,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나에게는 깊은 시대의 징후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직장도, 관계도, 심지어 취향조차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모두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시대.


떠남이 더 익숙한 시대


예전엔 직장생활이 곧 ‘삶의 연대기’였습니다.

첫 직장은 이력서의 첫 줄에 남고, 두 번째 직장은 인생의 굵은 챕터가 되곤 했습니다.

머무름은 자연스러웠고, 이동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왜?”라는 질문이 먼저 돌아옵니다.

변화는 성장이고, 이직은 자기 증명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성(Liquid Modernity)’에서 “이 시대는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고 흘러가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직장도, 관계도, 정체성도 단단히 붙잡히지 않고 계속 재구성됩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관계는 느슨해지고, 일은 단기화되며, 사람은 필요에 따라붙었다 떨어집니다.

마치 카톡 단체 채팅방처럼 초대되었다가, 아무 말 없이 나갔다가, 다시 불려 오는 구조가 우리의 모든 연결 방식에 스며들었습니다.


머무름은 노력이다


떠나는 건 쉽습니다.

퇴사도, 관계도, 취향도, 마음도.

잠시의 클릭이면 되고, 잠깐의 결심이면 됩니다.

하지만 머무르는 일에는 반드시 감정이 필요합니다.

책임이 있고, 정성이 필요하고,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머무르려면 익어야 하고, 서로의 결을 알아가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는 경험들’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노력의 축적보다 빠른 이동을 선택합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의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소유하려 하지만, 그 소유가 우리를 얽매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직장도, 관계도 그런 대상이 되었습니다.

갖고는 싶지만, 지나치게 얽히고 싶지는 않은 것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깊어질수록 잃었을 때의 고통도 커집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적당한 곳에서 멈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사랑하고,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다가가며,

오래 머물지 않을 정도의 깊이에서 관계를 유지합니다.


떠날 수 있는 자유, 하지만 잃어버린 어떤 것


물론 떠남에는 아름다운 자유가 있습니다.

원하는 일을 향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더 괜찮은 삶을 위해

사람들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래 머물러 본 사람만이 아는 어떤 깊이가 있다는 사실.

오래 머문 사이에만 생기는 신뢰.

오래 머문 자리에서만 생기는 온도.

오래 머물러야만 보이는 풍경.


한 동네에 오래 살아야 그 골목의 리듬을 이해하게 되고,

한 취미를 오래 파야 그 안의 미묘한 결을 알아차리고,

한 사람과 오래 함께해야 침묵도 대화가 됩니다.

깊이는 오직 시간이 허락하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왜 머물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속도가 가치가 되고, 효율이 미덕이 되며,

오래 머문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그러나 공원에 앉아 바람의 속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깨닫게 됩니다.

변화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리듬이 있다는 것을.


나뭇잎은 한 계절 내내 나무에 머물고,

새들은 매년 같은 나무로 돌아오며,

바람은 늘 이 길을 지나갑니다.

자연의 리듬은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단단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오래 머문다고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머물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머문 자리의 온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절이 바뀌어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시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계절이 조용히 건네는 또 하나의 배움 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는,

바람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한 공원 한편에서

그 배움을 천천히 마음에 받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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