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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11. 2016

내가 글을 좀 쓰긴 쓰나 보다


 흔히 사람은 누구나 먹고살 수 있는 재능 한 가지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발기술이 좋은 사람은 태권도 선수나 축구 선수를 하게 해 주고, 공을 요리조리 잘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야구 선수를 하게 해 주고, 손가락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프로게이머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역시 재능이 곧 평생 직업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발기술도 좋지 않았고, 농구공은 좀 던지기는 했지만 선수만큼은 아니었고,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나름 손가락 기술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프로게이머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의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가 없어져 도무지 의욕을 낼 수가 없어 재수까지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니 누구보다 자신 있는 게 책을 읽고 후기를 쓰는 일이었다. 학교 폭력으로 얼룩진 중학교 시절에 독서감상문 숙제를 해서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책을 읽으면 한 생각과 함께 책에서 읽은 장면 하나를 얼렁뚱땅 그려서 냈더니 '정말 잘 적은 독서감상문'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칭찬받았다.


 그때 나는 글쓰기에 꽤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여러 글짓기 대회에 참여했고, 지역에서 열리는 청소년 백일장 대회도 참여했다. 입상을 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참여한 횟수만큼 상을 받았던 것 같다. 어릴 때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블로그에 적은 글은 지금 다시 읽어도 조잡한 글이지만, 점점 최근의 숫자로 올수록 글이 제법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을 때마다 종종 여러 사람이 칭찬을 해주고, 한때 블로그 전성기에는 내가 쓴 글이 심심하면 다음 메인 화면에 걸렸다.


 '어라? 나 좀 잘 나가는 것 같은데?'라는 마음을 품기 시작할 때, 나는 티스토리에서 처음으로 우수 블로거로 선정이 되었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다니면서 할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글을 적었던 건데, 그 일로 우수 블로거로 선정되어보니 기분이 남달랐다. 나는 더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블로그에 공들여서 적기 시작했다.


 요즘 중2병은 저리 가라고 말할 정도의 시간을 중학교 때 보냈고, 우리가 읽는 소설에 등장하는 히어로처럼 나는 집 안과 밖으로 꽤 많은 고생을 하면서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정확히는 세상에 대한 불만)를 잔뜩 쌓이게 했는데, 2011년에 나는 그 이야기를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듯 글로 적었다.


 몇 개의 글은 하루에 7만 명이 읽을 정도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대박을 노리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그대로 적은 글이 너무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게 부담스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즐거움에 나는 2011년 한 해 동안 정말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적었다.


 그랬더니 상상도 못 한 행운을 얻었다. 내가 2011년 다음뷰 블로거 대상 후보로 선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다음 측에서 전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대박이야!'라며 놀랐다. 내 글이 제법 많은 사람이 읽고, 다음뷰에서 황금펜으로 선정되면서 올라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2011년 블로거 대상 후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었다.


 2011 블로거 대상 후보에게 투표가 시작하면서 나는 내 블로그가 뜻밖의 선전을 하는 모습에 놀랐다. 시사 카테고리에는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지만, 득표수는 2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블로거 대상 후보는 아니더라도 카테고리 우수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어머니께 자랑을 했다.


 그러나 제대로 김칫국을 마신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득표수는 시사 카테고리 분야에서 2위를 기록했지만, 카테고리 우수상은 다른 분께 돌아갔다. 시사 카테고리 분야 1위를 기록한 무터킨터 님은 2011년 블로거 대상에 선정이 되었다. 결과를 보면서 아쉬움이 진하게 들었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에 블로거 대상에서 탈락한 소감을 글로 적어서 블로그에 발행했다. 그동안 내 블로그를 지켜보면서 응원해주신 사람들의 격려를 받았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재능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내가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을 적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때부터 블로그는 의미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을 보면서 시작한 블로그다. 글을 쓰면서 '어라? 내가 글을 좀 쓰는 것 같다.'라고 자만하기도 했지만, 더 좋은 글을 꾸준히 적는 분들을 보면서 더 많은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다. 나는 글에 가식을 담지 않으려고 했고, 내가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내가 생각하는 사실을 쓰고자 했다.


 바보가 산을 옮긴다는 말처럼, 바보 같았던 내 글은 사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몇 번이고 많은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해주었고, 그 칭찬을 들으면서 나는 때때로 우쭐해하면서도 아직 부족한데도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을 정말 감사히 받았다. 늘 재능도 없고, 못 생겼고, 공부도 못한다고 천대받던 내가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내가 글을 좀 쓰는 것 같다.'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나는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약간의 자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자만에서 시작한 자신감이 오늘 9월 10일까지 총 1200만 명 이상이 방문한 큰 블로그가 되도록 해주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TV에서 종종 네이버 파워블로거가 등장하며 '이 상을 받는 건 영화계에서 오스카 상 받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라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벌써 6번이나 그 상을 받았어!'라며 웃었던 적도 있다. 비록 네이버와 티스토리에서 받는 상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6년 연속 열심히 한 나에 대한 작은 상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만족스러웠던 적도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적도 많았다. 나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내가 글을 좀 썼으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천재적 재능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것 자체가 재능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어서 책만 읽었고, 책을 읽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 말을 옮기기 위해서 글을 하나둘 적다 보니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꿈을 꾸게 되었다. 이 작은 재능마저 없고, 블로그와 만나는 기회마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도무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정말 글을 쓰기 시작해서 다행이다.


 내가 글을 좀 써서 다행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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