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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10. 2016

갑작스러운 책장 정리


 내가 가진 전자 피아노는 책장 앞에 대각선 방향으로 놓여있다. 매일 아침, 매일 틈 날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애니메이션 OST 곡이나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을 연습한다. 한 날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문득 눈앞에 있는 책장에 꽂힌 책의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장이 갑자기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피아노 연습을 하는 도중에 '요 앞만 정리해놓자.'는 마음으로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꽂힌 책들을 높이 순서에 따라 다시 배열하고, 책 위에 놓인 잡동사니를 드러냈다. 한 칸이 정리가 되니 또 옆칸에 눈이 갔고, 하는 김에 옆칸도 같이하려고 또 책을 꺼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는 언제나 시작하면 끝이 안 나는 법이다.


 처음에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정리하려고 했더니, 어느 순간에 한 책장에 꽂힌 책 절반을 꺼내서 정리하고 있었다. 이미 전자 피아노는 전원을 꺼두었고, 걸레를 빨아와서 책장을 닦으며 열심히 정리를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침에는 피아노 연습을 하기로 일정을 정해두었지만, 갑자기 엉망이 되어버렸다.


 다시 피아노 연습을 하기에 이미 너무 어질러진 상태라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은 조정래 작가의 <풀꽃도 꽃이다>를 고르게 배열한 책들 앞에 놓으니 깔끔하게 들어갔다. 순간 '오호, 이렇게 정리하면 더 깔끔해지겠다.'라고 생각한 나는 비슷한 크기의 책들을 골라서 하나둘 크기대로 배열하며 책장에 꽂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출판사에서 받은 여러 책이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놓여있었다. 그 책 중에서 <왕게임> 시리즈 책이 딱 맞아 들었고, 조정래 작가의 소설과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옆에 놓아두니 금상첨화였다. 한 부분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다른 부분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읽지 않는 책들을 하나둘 빼냈다.


 어느 사이에 방바닥은 책과 먼지로 둘러 쌓였고, 가을바람이 부는 날임에도 옷이 땀에 젖기 시작했다. 피아노 앞의 책장만 정리하려고 하니 주제별로 너무 다른 책이 있었고, 크기가 천차만별이라 주제와 크기 별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책장에 손을 대기 시작해서 비질비질 땀을 흘리는 정리가 시작되었다.


 6년 전에 들은 대학 강의에 쓴 교재를 모조리 버리기로 하고, 읽지 않는 책들은 먼지가 쌓이는 구석으로 유배를 보냈다. 6년 만에 복학하여 수업을 듣는 대학 교재는 책장 앞에 장식을 했다. 라이트 노벨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에 협찬을 해주는 출판사 만화와 소설은 종류가 너무 많아서 한 곳에 뭉쳐 놓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만화책들은 같은 크기의 만화책이 있기도 하지만, 다른 크기의 만화책이 섞여서 가지런히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썩 좋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또 모조리 책을 다 빼내서 크기에 맞춰서 가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문득 떠오른 게 미니멀 라이프였다.


 그동안 아까워서 가지고 있던 '읽지 않는 책'들을 나눔 이벤트로 나누기로 했다. 이미 책장에 꽂힌 라이트 노벨과 만화는 양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라 조금씩 페이스북 페이지 이벤트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벤트에 사용할 책들은 한 곳에 모아서 정리를 했다. 놀랍게도 이 선택은 정말 멋진 선택이었다.


 딱 빈 공간에 지금 재미있게 읽는 만화책과 소설을 넣었더니 높이가 딱 맞아떨어졌고, 공간도 딱 알맞게 들어갔다. 공간이 어중간해서 고민이던 <땡스북>도 정리를 통해 생겨난 공간에 놓으니 딱 들어맞았다. <땡스북> 시리즈를 정리하고, 그 위에 사인 야구공을 장식하니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역시 버리는 게 미덕이었다.


 라이트 노벨 한정판을 구매하면서 얻은 불필요하게 큰 퍼즐 박스도 한 곳으로 몰아서 정리했다. 그 앞에는 조금 보기 싫게 삐죽 튀어나온 책들이 있지만,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계단식으로 책을 배열하면서 나름 만족스럽게 정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참, 나는 왜 이렇게 계단식 배열 정리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책장 정리를 하다 보니 이제는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책들에 눈이 갔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참고하기 위해서 꺼내 뒀다가 돌아갈 책장 자리를 잃어버린 녀석들이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은 이 뜻 이리라. 이 책들을 위해서 다시 다른 책장의 책을 계단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제법 깔끔하게 정리를 마쳤다.


 흐뭇하게 책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또 큰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라이트 노벨은 보통 시리즈별로 함께 놓아두는데, 몇 권의 책을 빼서 정리하다 보니 짝을 잃어버린 놈들이 있었다. 카와하라 레키의 <절대적 고독자 3권>은 마치 '나는 고독해'라고 주장하듯 홀로 다른 라이트 노벨 시리즈가 꽂힌 책장 끄트머리에 꽂혀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절대적 고독자> 시리즈가 어디에 꽂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책장 자리가 부족해서 일반 책 보다 크기가 적은 라이트 노벨은 앞과 뒤 겹쳐서 정리를 해두고 있던 터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려고 한 순간, '혹시 이 뒤에 있나?'라며 그 아래의 책장에 꽂힌 책들 중 앞에 꽂힌 책들을 들여냈다.


 그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는 <절대적 고독자> 1~2권과 또 홀로 외롭게 방치된 다른 책이 나타났다. 그 책을 꺼내고 1~2권 옆에 <절대적 고독자 3권>을 넣었다. 앞으로 4권이 발매되면 한 권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남았고, 그 앞을 다른 책들로 다시 정리하면서 책장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비로소 끝난 것이다!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시작한 책장 정리가 드디어 끝났다. 이제 한동안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피아노 연습을 했다. 하지만 정리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또 정리할 이유가 생기듯, 나는 이번 달에 주문한 책이 오늘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 더는 자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오늘 정리한 책장은 말짱 도루묵이 된 것 같다. 지금이 아주 깔끔하고 좋은데, 도대체 이번에 도착한 책들은 어디에 꽂아야 할까? 책을 빌려서 못 읽고, 전자책이 불편해 종이책을 고집하는 나는 또 갑작스럽게 책장 정리를 할 날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정말, 집이 도서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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