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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05. 2018

어울림

만약 모두와 조금 더 어울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평소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사람과 부대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내가 처음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참여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블로그 기획사에서 진행한 블로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만남 이벤트에 호기심이 들어서 과감히 첫 도전의 발을 내디뎠다.


그때도 사람 울렁증이 도진 나는 뭐만 먹으면 배가 아파서 종일 화장실을 오가야 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몇 분이 "괜찮아요?"라며 물어보았지만, 나는 태연히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만 더 경험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사람 울렁증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고쳐지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장소에 참여해 한 끼 식사를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사람 울렁증은 항상 나를 괴롭힌다. 1년에 딱 한 번 열리는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 참여할 때도 행사 촬영 내내 배가 아프다. 그래서 행사 촬영을 할 때는 온종일 물만 마시면서 굶고 다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종종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때때로 그 스트레스는 엉뚱한 사람을 향해 분풀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해로 나타나기도 해고, 종일 배가 아픈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에 워낙 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저절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더 줄어들게 되었다.


대학에서 갔던 한일 관광 교류 행사에서도 나는 이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해 후배 한 명에게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돌아서서 얼마나 내가 미친 듯이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이런 나를 고치고 싶어서 참여한 행사인데도 또 똑같은 실수를 한 거다. 한 번의 실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반복하는 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역시 안 되나 봐.'라는 생각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채워지는 듯했다. 다시 한 번 더 나는 사람과 어울리기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늘 혼자가 좋은 내가 억지로 이렇게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가 사치인지도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친구와 모두와 함께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걸까?


사람들과 꼭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린 상태로 모두와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도 참 쉽지 않다. 책에서 읽은 대로 실천하려고 해도 뭔가 페이스가 무너지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또 가만히 듣는 입장이 되어 리액션만 하다 보니 다음 화제가 없어질 때는 긴 침묵만이 지배한다. 애초에 소통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한사코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떠들 수 있는 걸까?


만약 모두와 조금 더 어울릴 수 있었다면, 나는 사람 울렁증을 더 좋은 상태로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직 진행형이다. 나는 조금씩 모두와 어울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좀 더 길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어 만족하고 있다.

무엇이든 성급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노출하는 것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조금 더 일찍 모두와 어울릴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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