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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Oct 15. 2018

1군

만약 내가 3군이 아니라 1군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을까?

보통 우리가 다니는 중고등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그 계급에 따라 1군, 2군, 3군으로 나누어져 학교생활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1군에 속한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사이도 좋고, 반 내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2군은 보통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속해 있고, 사교성이 뛰어나거나 웃음을 담당하는 아이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3군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면서 한 달 정도 시간 안에 결정되는 반 내의 1군, 2군, 3군은 뚜렷한 계급이 되어 대체로 1년 동안 이어진다. 1년 동안 1군 2군 그룹에서 서로 와해하거나 새롭게 결성되는 그룹도 있지만, 그들이 3군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곧 학교 폭력 사건이 발발했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외면할지 몰라도 학교를 오늘날 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학교가 얼마나 계급 사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1군, 2군, 3군 중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학교에 다닌 추억도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늘 3군이었던 나는 1군 2군 출신인 사람들이 말하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같은 행사가 즐거웠던 적이 없다. 정말 쓸데없이 돈을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 그런 행사는 가장 참여하기 싫은 행사 중 하나였다. 당연히 3군 시절의 평소 생활 습관은 그대로 성인이 되더라도 남아 있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1군 2군이 아니라 3군으로 생활하면서 조용히 학교생활을 보낸다.

가끔 주변 사람이 "대학생인데 같이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학교 마치고 놀러 가거나 하지 않아?"라고 묻는다.

마치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마치 그런 대학 생활이 대단히 즐거운 대학 생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르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집에 돌아가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불편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러 가거나 시끌벅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고문에 불과하다. 때때로 정말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거나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할 때는 참여하지만, 대체로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로지 내 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오늘이 즐겁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조용히 혼자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쓸 때가 가장 즐겁다. 글을 쓰다가 잘 써지지 않아 피곤해지면, 피아노 연습을 짧게 하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면 된다. 그래도 뭔가 가슴의 답답함이 가시지 않을 때는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에는 1군 2군 3군 없이 모두 똑같이 파란 하늘이고, 파란 하늘을 수놓은 구름은 천천히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할 뿐이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가끔, 아주 가끔, 혼자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때 "만약 내가 3군이 아니라 1군이었다면,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할 때도 분명히 있다. 맞는 친구 혹은 동료끼리 어울리며 웃고 떠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조용히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피식 웃으며 '내가 그럴 리가 없지. 나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만약 내가 3군이 아니라 1군 2군이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알 수 없다. 더 즐거울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즐겁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군으로 사는 생활이 나와 딱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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