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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Nov 15. 2018

까라면 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까라면 까야 한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고, 그 법칙에 적응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제 세상은 까라면 까는 세상이 아니라, 그런 부당함에 대항해야 하는 세상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며칠 전에 어머니 심부름을 하러 갔다가 만난 한 사장님을 통해 취업에 대한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장님께서는 한사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한국 사회가 가진 '까라면 까' 문화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처음 사장님의 의견을 들을 때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조직 문화를 지나치게 미화하면서 '까라면 까야 하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낙오자로 말하는 모습에 살짝 짜증이 났다.

물론, 그 사장님이 살았던 시대는 '까라면 까야 하는' 시대였고, 자신은 그 시대를 겪은 장본인으로서 버텼기에 지금하는 작은 업체의 사장이 될 수 있었을 거다. 나는 그러한 노력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고, 말투와 행동에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장님께서 주장한 한국의 어긋난 조직 문화는 찬성할 수가 없었다. 까라면 까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건 그냥 '노예'이고, 자신의 의사 없이 모든 걸 해야 하는 을, 병, 정의 심각한 처우를 전혀 개선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그러한 사고방식이 낳은 사회 문제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최근 여론에서 주목을 받는 갑질 사건인 맥도날드 알바생에게 주문한 제품을 다시 던져버린 사건을 비롯해 직장 내에서 문제가 발발한 직장 내 왕따 문제, 성추행 문제 등 그 문제의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한유총 같은 집단이 벌이는 일은 상식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집단 내에서 하는 일이니 잠자코 따라야 한다? 그래야 진급해서 조금 더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차라리 조금 덜 잘 먹고 잘살아도 그런 비겁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물론, 사람이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할 수는 없을 거다. 때때로는 불의에 눈을 감으면서 모른 채 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까라면 까고 싶은 문화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아웃 사이더가 되어 배척을 당한다고 해도 잘못된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나만 그런가? 다 이래.'라고 말하며 조직 생활의 잘못된 문화에 편승하는 일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같은 조직 생활에서 적응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는 '내가 겨우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건가?'라는 막연한 후회에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고개를 굽신 숙이며 점점 익숙해지는 사이, 자신도 괴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강요하는 것도 점점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글러 먹었다는 말 이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어쩌면 갑질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탓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갑질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까라면 까'라는 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적응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잘못된 관습을 그대로 자식 세대와 후발 주자에게 물려주면서 사람들은 '공공의 적'을 물어뜯으며 단맛을 볼 뿐,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일에는 침묵한다. 그러니까 갑질 문제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머무를 뿐인 거다.

만약 당신이 어느 직장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서 까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누군가를 깔 수 있겠는가? 부하 직원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마치 개인 심부름꾼으로서 자신을 대하는 상사의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따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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