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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Nov 20. 2018

아플 때

만약 내가 아플 때 곁에서 간병해줄 사람이 있다면, 온전히 하루를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부터 감기몸살이 심해서 온몸이 뜨겁고 무겁다.

감기몸살이 올 때마다 항상 속도 안 좋아서 늘 컨디션이 최악이다.

이럴 때 곁에서 감기에 좋은 음식을 누군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홀로 집에서 대충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쉬어야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선택지다.


아프다고 해서 쉴 수 없는 게 또 우리 한국 사람의 현실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오늘은 오후 2시부터 대학 강의가 있어 학교에 출석해야 하고,

블로그에 쓸 글과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또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는 것도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해야 할 일 목록을 다 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몸을 쉬게 하고 싶다.

내가 자주 보는 만화와 소설을 보면, 늘 감기에 걸렸을 때마다 학교 혹은 직장도 쉬어가면서 집에서 푹 쉬는 모습이 흔하게 그려진다. 일본은 감기몸살 같은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학교 혹은 직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평소와 같은 일상을 잠시 멈춰도 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감기몸살로 쉰다고 말한다면, 주변에서 "겨우 감기몸살로 쉬겠다고? 장난해?"라는 핀잔이 날카롭게 들어올 거다. 한국은 그렇다. 언제나 자신의 몸보다 조직 생활이 우선이고, 함께 지켜야 하는 규칙이 우선이다. 이러한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한 사람의 온전한 생활을 할 권리를 빼앗으며 아플 때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서 '아플 때는 쉬어야 하고, 퇴근 시간에는 퇴근해야 하고, 연휴에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대중 매체를 통해 가까운 일본, 멀리는 유럽의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여전히 보릿고개 시절을 떠올리며 '아플 때도 일해야 하고, 퇴근 시간이라도 상사가 있으면 일을 해야 하고, 연휴도 조직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당연한 가치관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는 지금 두 세대 간의 가치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거다.


내가 아플 때 곁에서 간병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송곳으로 목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약을 먹고 스멀스멀 다가오는 잠기운을 이기면서, 나는 오늘도 오늘의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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