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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Dec 07. 2018

부끄러움

만약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나 같은 소극적인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 중 절반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어버버 거리기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니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결국 말을 거는 걸 포기해버린다. 여기에는 모두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를 해서 모두가 비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도저히 그 상황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증상을 겪던 나는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대화의 기술과 관련된 책을 읽었고, 말을 걸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실패했을 때 겪을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에 조금 더 나아지고자 노력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부끄러움을 몰랐다면, 상대방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매너를 배우는 걸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이 있었기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서 상대방을 대하는 법을 배우며 겸손해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부끄러움은 결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더 나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은 '나 자신에게 당당하다.'는 좋은 말로 말할 수도 있지만, '후안무치하다.'라는 나쁜 말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실수했을 때 자신 혹은 상대방이 겪을 상황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종종 선을 넘어버릴 때가 많다. 그 선을 넘어버리더라도 '에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상대방의 동의 없이 넘어가 버리기 일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도 느끼지 못해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당당함과 달리 그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만이 되어버린 거다.

자신과 약속한 일을, 자신이 언제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 일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마땅히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자신이 3일 만에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분석을 하고, 최대한 시급히 일을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람의 마땅한 도리다. 만약 자신이 장담한 일을 왜 하지 못했는지 원인분석도 하지 않고, 약속한 시각에서 조금 늦어졌는데도 최대한 일을 빨리 해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최악이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능력 부족 혹은 노력 부족을 탓하지 않고, 언제나 외부를 탓하며 "제가 왜 책임감이 없어요? 하다 보니 늦어졌을 뿐이지,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라며 적반하장으로 성을 낼 뿐이다. 구차한 변명 대신 최대한 일찍 일을 마칠 수 있게 헌신하면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변명만 하면서 마치 남일 대하듯이 일하는 사람은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결코 신뢰받을 수 없다. 열의 열은 그런 사람과 두 번 다시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사소한 인간관계조차 맺으려고 하지 않을 거다. 당연히 나 또한 그런 사람이랑 일절 관여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건 당당한 게 아니라 자만에 빠진 거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실수를 줄이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실수에 대처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주도적으로 일을 하여 책임감을 지녀야 할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만에 빠져 다른 사람을 생각지 못하는, 자신에게조차 일절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어제 내가 적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자신과 스스로 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오늘은 제대로 해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거기서 멈춰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이기심은 자신의 대화와 행동에서도 새어 나와 주변 사람과 점점 멀어지게 하고, 회사에서는 거래처가 끊기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조심하자.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부끄러움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발판이고, 우리가 아직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감정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고,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사람들로부터 신뢰받고, 인정받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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