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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Dec 14. 2018

여자친구

만약 친구에게 연애 상담을 듣는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학교 일본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친구가 이전부터 계속 빈번하게 전화를 걸어서 "야, 지난번에 걔 서울에 왔다고 해서 고백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 것 같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등의 이야기를 나에게 물어봤지만, 연애 경험은커녕 누군가에게 고백한 적도 없는 나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아마 전화를 건 친구도 나에게 명확한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나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해.", "네가 계획한 그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대답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에 친구가 "야, 나 고백했다가 차였어…."라며 전화를 했다.

이런 경험이 전무한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어렵게 "음, 뭐, 어쩔 수 없지 뭐. 일본이랑 한국은 문화가 다르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녀석은 "무슨 소리야? 한국이랑 일본 문화가 뭐가 어떻게 다른데?"라고 따져 물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지만, 그래도 차인 녀석이니 위로가 필요하다 싶어 "한국 사람이랑 일본 사람은 생활 스타일도 조금 다르고, 선호하는 이성에 대해 생각하는 기준도 다르잖아. 그러니까 교집합이 있어도 그 교집합은 범위가 작을 수밖에 없어."라며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 녀석은 웃으면서 입을 떼었다.

"야, 뻥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사실은 우리 사귀기로 했다. 고백받아줬어."

하? 이 말을 듣자마자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단절에 끊어버리지 못하는 게 또 내 성격이기도 해서 그냥 친구의 말을 계속 들었다. 어떻게 고백하고, 걔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친구들에게 뭘 말했는지, 이제부터 원거리 연애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축하한다. 열심히 해라." 같은 말로 마무리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이 일이 있고 나서도 몇 번이나 전화로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물어봤는데, 그때도 "야, 시발. 난 모른다고. 그런 거 묻지 마."라며 강하게 대답해도 친구는 한사코 "그래서 객관적인 너의 의견을 묻고 싶은 거야."라며 질문을 던졌다.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는 일이 이렇게 귀찮을 줄이야.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연애를 시작하는 일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도저히 누군가와 사귄다는 선택을 할 정도의 감정이 어느 정도의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고백하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어느 중간한 감정으로 고백해서 시간을 함께 보낼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

여자친구라는 단어는 나에게 소설 속에서나 이야기이고, 걸그룹 여자친구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살짝 관심이 생긴, 혹은 눈이 마주쳐서 가슴이 두근거린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은 죽어도 하지 못한다.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나에게 연애 상담을 한 친구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짜증은 친구의 질문만 아니라 내가 하지 못 하는 일에 대한 짜증일지도 모르겠다. 나이=여자친구 없는 세월인 나는 과연 친구에게 저런 질문을 하며 곤란하게 할 시기가 올 수 있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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