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멈춰라
추석이라고 하더라도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온라인 게임에 돈을 쓰거나
먹는 일밖에 없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청춘 응원 콘서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방송에서 젊은 나이임에도 성공한 사람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도전하세요. 젊으니까요.'이라는 말이 주제였다.
도전하라.
확실히 아름다운 말이다.
이 말처럼 우리의 행동을 촉구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런데 말이다.
도전하라는 말을 한다고 몇 명이나 할 수 있을까?
분명히 도전해야 얻을 수 있지만, 요즘 청년 세대는 도전이라는 글자를 모른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그렇게 도전을 모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도전보다 언제나 안정이 최선이라면서 도전을 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어릴 때 내가 모르는 동네를 탐험하고,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에 떠나 보고,
가끔은 산에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도전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라면서 도전하다가 실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부터 도전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세대였다.
도전하라, 도전하라, 도전하라…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과연 우리 세대 중 몇 명이나 부모님의 반대와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고 도전할 수 있겠는가.
'도전하라'는 조언보다
지금 대학에서 비전이 없으면 대학을 때려 치우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지금 그 공부로 평생 먹고 즐겁게 살 자신이 없으면 당장 때려 치우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나 또한 그 TV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엄마와 다투었다.
엄마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이라면서 코웃음 치면서 반대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래전부터 '대학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주장했었으니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과연 몇 명이나 과감히 뛰쳐나가서 도전할 수 있겠는가.
지금 밖으로 나가게 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조롱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도전보다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단어로 만들어진 감옥에 있다.
감옥 속에서 과연 우리는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뛰쳐나가고자 오래전부터 발버둥 치고 있다.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두드렸지만,
내 손으로 그 문을 쉽사리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겁쟁이고, 낙오 자고, 실패자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도전하기 위해서 발을 가까스로 빼냈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이 감옥을 벗어날 때,
나는 비로소 나로 살면서
도전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