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더 좋아진 금요일

우리 동네, 우리 집 그리고 나

by 미음스토리


이곳으로 이사 온 지 9년 차.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이곳에 살게 되었다. 나에게는 꽤 낯선 동네였다. 게다가 아파트가 아닌 주택. 신혼부부가 주택에 사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들어갈 동네니 조금만 살다가 자연스레 나오자는 결론. 그래서 30년이 넘은 주택을 아주 기본적인 수리만 하고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된 주택단지이기에 이곳에 사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오랫동안 거주하시고 계셨기에 그 흔한 편의점도 5분은 걸어 나가야 있다. 그래도 있는 게 어딘가. 신혼 초에는 10분은 걸어나가야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동네가 너무나 조용했다. 앞집도 뒷집도 모두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니 동네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집 바로 앞에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큰 대로변이 아니기 때문에 조용한 편이고, 그 누구 하나 떠드는 사람이 없다. 있다면 되려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창문을 닫고 스피커를 켜놓으면 이만한 힐링이 또 있겠는가. 음악 크게 틀어놓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또한 층간 소음으로부터 탈피는 덤이다.



미혼 시절의 나는 도시 소음과 집에서의 소음으로부터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집에 살기 시작하고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 고요가 너무나 감사했다. 소음이 아닌 지저귀 새소리로 가득한 이 동네는 나에게 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행복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나는 이사 온 지 3년 뒤 출산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이 싫어지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재개발은 말만 하고 시행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이는 계속해서 울어댔다. 쉬지 않고 울어대니 외출을 할 수도 없다. 또한 육아용품으로 짐이 늘어나면서 좋기만 했던 이 집이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숨통이 조여왔다.



게다가 아이가 없는 동네다 보니 더 외롭게 느껴졌다. 육아하는 또래들이 많았더라면 의지가 조금이라도 됐을 텐데, 나는 아무에게도 기댈 수가 없었다. 육아하는 친구들은 모두 멀리 살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더 많았다. 멍하니 변하지 않는 창문을 바라보는 게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아이는 돌까지 쉬지 않고 울어댔고, 칭얼댔다. 날려버릴 길 없는 나의 피로도는 결국 구급차를 부르게 되었고 그로부터 대학병원 신세를 2주가 지게 되었다. 아이의 돌잔치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다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다. '동네에 아이들도 없는데 대체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집을 보내니 나의 시간이 늘면서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동네에 아이들의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처했던 고립은 나 스스로 자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어린이집 생활을 3년 동안 하였고, 그동안 다른 엄마들과도 말할 기회가 생겨났다. 놀랍게도 모두들 나처럼 외롭게 육아를 해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파트가 아니다 보니 그런 부분은 지금도 아쉽다고 생각한다. 함께 했으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더 의지가 됐을까? (그렇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아이가 많은 아파트에서는 또 그만한 고충도 있다고 들었다.)



6살이 된 아이는 지금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아주 밝고 즐겁게 유치원 생활하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내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안정을 되찾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토양이 단단해질수록 기쁨과 행복이 다시 얼굴을 빼꼼 내민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기에, 작년 함께해 주신 어린이집 선생님과 만나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되려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이 나의 스승이셔요.”라는 말까지 남기신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선생님 ㅠㅠ!!



그리고 동네를 걷다가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며칠 전에 처음 방문해 보았다. 개성과 정성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좋은 음악이 틀려져 있었고, 맛있는 커피가 제공되었다.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는데 얼마나 집중이 잘 되던지 2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때의 느낌이 좋았는지 계속 생각이 나서 오늘 또 방문했다. 오늘은 사장님과 스몰토크도 하게 되었다.


"여기 가만 앉아 있으니 나무 풍경도 좋고 새소리도 너무 좋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가 아닌데 어떻게 이 곳에 카페를 열게 되었어요?"


사장님께서는 나의 질문이 반가웠던 건지 아주 상세히 답변해 주셨다. 그리고 추가적인 이야기도 덧붙여주셨다. 그 말속에서 사장님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순수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나이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느껴졌다. 이 카페를 오래오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답변으로 너무 거창한 말보다는 담백하게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 이 카페는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나의 행복감이 올라갈수록 기쁨과 행복에 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나는 더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행복으로 가득 차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사는 이 동네가 좋다.

내가 사는 이 집이 좋다.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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