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
멀고도 먼 이야기 같던 그 서사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오늘은 최저기온 24도, 최고기온 34도에 육박하는 날씨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전 시간을 어디서 보낼까 생각하다 집 앞 공원이라 불리는 작은 산으로 향했다. '이 더위에 무슨 산책?'이라는 생각이 나를 덮치기 전에, 산책 후 카페에 가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경로까지 재빨리 생각해냈다. 그렇게 내 발걸음은 힘차게 산으로 향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산을 걸었다.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무들 사이에 햇살이 여울졌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고 내가 이곳을 걷고 있다는 자부심이 차올랐을 그때, 내 손등 위에 모기가 한 마리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이런!!' 나는 재빨리 모기를 밀쳐냈고 몸 다른 곳에 붙어있지는 않을까 팔을 허우적거렸다.
바로 그때, 이어폰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의 파드닥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뭔가 질퍽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으악-!!......"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새 똥' 이란 걸맞았다. 콩알만큼 작은 것이었다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주 질퍽하고 요란한.. 아이였다. 오른쪽 어깨와 오른쪽 팔, 오른쪽 다리, 가방끈. 총 4군데에 똥이 튀여 있었다.
'오. 마이.. 갓...'
오늘 아침 가방을 챙길 때, 휴대용 휴지를 찾고 있었는데 물티슈밖에 안 보여서 급한 대로 물티슈를 넣어 왔었다. '아.. 이런 이유로 물티슈가 내 눈앞에 있었던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와! 다행이다.'였다.
다행이라 생각한 이유는 이러했다.
내 가방에 물티슈가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이 모두 검은색이었다. 심지어 바지는 잘 닦이는 소재였다.
비명을 질렀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더러운 것보다 부끄러움이 더 중요했군...ㅋㅋ)
얼굴과 머리에 맞지 않은 게 어딘가.. 그랬다면 정말 참담했을 것 같다.
이 생각에 이어 새로운 글감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 나란 사람 정말 긍정적이구만..?
하지만 생각을 더듬어 보니 나도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긍정적인 생각 전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음을 알아챘다. 물티슈가 있다고 인식하기 전 찰나로 지나간 생각이 그랬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집에 가서 바로 씻어야겠다.'
'... 그런데 집에 가기 전까지 이 찝찝한 기분을 이어가야 하나?' 그러긴 싫었다. 오늘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는데, 이 기분으로 집에 간다면 새 똥이 나의 모든 걸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재빨리 가방 속에 있는 물티슈를 생각해냈고, 새 똥을 닦은 뒤 물티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팔과 손은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었다.
그런 뒤 카페로 향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당이 많이 떨어져서 커피와 함께 마들렌도 함께 먹으며 새똥의 추억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했더니 로또를 사야 한다며 떠오르는 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 - '5.5.19.0.2.3'
남편 - 로또를 모르네 ㅋㅋ '0'은 못해. 1-45번 숫자 중에 6개를 골라야 해.
나 - 그럼 '5.5.19.2.3.30.' 이걸로 해줘.
남편 - 5를 어떻게 두 번 하니?
나 - 아? ㅋㅋ
로또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구나.. 그런데 나는 오늘 어떻게 새똥을 맞은 거지? 정말 운이 좋은 하루인건가?
새 똥의 기억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