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삶
불이 나서 집에 있는 물건들이 다 타버린다면?
홍수가 나서 물에 다 젖어버린다면?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고 가정한다면, 사실 크게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내가 기록한 글들이 사라진다는 건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일 것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그냥 살지 않는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 존재한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은 '기록'이다. 나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끄집어 내고,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 내가 이런 삶을 택하게 된 계기는 다른 삶을 기대하면서부터였다. 끌려가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단 '나'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야 했다. 그것의 시작이 '기록'이었다.
책을 읽고 마음이 가는 구절이 있으면, 전시를 보고 마음에 가는 작품이 있다면, 음악을 듣고 마음이 가는 앨범이 있다면, 왜 내 마음이 그런지에 대해 생각에 그치지 않고 노트를 꺼내 끄적였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한 것들이 쌓여갔다.
나의 생각들은 다이어리, 스케줄러, 독서 노트, 음악 노트,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스토리에 부지런히 기록됐다. 이 기록을 한다고 해서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알아차림'을 통해 세상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
- <아무튼, 메모> 정혜윤 p.45
이 기록이라는 행위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니! 그러고 보니 진짜 맞는 말이었다. 나는 기록이라는 것을 통해 나 자신을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나를 뒤흔드는 외부적 요인들을 차단하려고 노력했고, 나의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들에 대해 기록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때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을 기록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내삶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 오늘 카페에서 문득 만나게 된 <아무튼, 메모>라는 책에서 너무나 반가운 구절들을 만나게 되었다.
"소로우처럼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나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만' 주로 적었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p.57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p.48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에서 마음에 딱 맞는 구절들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게다가 작가 성함을 보니 '정혜윤'이었다. 작년에 <삶의 발명>이라는 책에 너무나 많은 울림을 받아 책을 소장했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했었는데 그 책과 같은 저자였다.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같은 작가분이셨다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생각은 있는데 방법을 모르겠거나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메모부터 해보는 게 어떨까? 기록의 힘은 직접 경험해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삶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자기 모습을 만든다. 삶은 구불구불 흘러가다가 잠깐 멈추고 정지된 시간 속에서 단단해진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