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즐기기
무더위가 절정에 치솟는 7월 말, 8월 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데 하늘은 정말 그림같이 예쁘기만 하다. 거 참 야속하네. 거세게 쏘아대는 햇빛과 아이들의 긴 긴 방학. 전쟁터가 따로 있으랴.. 몸부림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아우성이 쉼 없이 메아리친다.
더위에 지쳐 휴가 계획도 따로 생각하지 못하다 나에게도 방학이 들이닥쳤다. 온 가족이 지속적으로 함께 있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힘들었다..ㅎㅎ) 탈출 본능이 몸부림쳤다. 가까운 거리라도 휴가를 반드시 떠나야만 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바다로 갈지 계곡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어른들이 더 좋을 호캉스로 정했다. 휴식을 위한 휴가니까 편의성이 좋은 곳으로, 거리도 가깝기를 희망했기에 경주로 정했다. (경주는 요즘 mz 세대들에게 핫한 곳이다. 황리단길에 음심점과 카페들이 즐비해있다. 또한 우양미술관, 오아르 미술관, 솔거 미술관 등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는 문화 예술적인 곳이다. 미술관으로부터 받은 쓰나미 감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경주에 도착해 황리단길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한 뒤 해가 질 때까지 수영을 했다. 아이는 너무나 즐거워했고, 그 덕에 남편과 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밤이 되었을 때 아이와 남편은 먼저 잠이 들었고, 나는 책상에 스탠드를 켜고 책과 다이어리를 펼치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 여행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날 밤 내 머릿속엔 두 아이가 대화를 나눴다.
A: 내일 보문호를 달릴 수 있을까? 아마도 안되겠지..? 괜히 무리하지 말고 호텔 헬스장에서 뛰자. am 6:00면 헬스장 오픈 한 대.
B: 보문호를 뛴다면 5시에 나갈 거고 6시면 끝날 텐데, 헬스장에 가면 6시에 시작을 하니 적어도 7시에 끝나잖아? 좀 별로지 않아?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뛰어봤다는 거에 의의를 두자. 어때?
A: 좋아.
그렇게 나는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보문호를 향해 나갔고, 해가 뜨기 전부터 뛰기 시작했다. 안개가 많은 날이어서 시야는 흐릿했고 습도는 높았다. 뛰는 구간마다 다양한 생각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시작: 까짓것 해보자!
1.5km: '그만 돌아갈까?'의 말을 무한 반복했다.
3km: 내가 가는 이 길이 (제발) 지름길이기를 바랐다.
4km: 러닝 하는 분들이 몇 분 계셨고 그 덕에 '힘든 기색 너무 내지 말자'로 페이스를 조절했다.
5km: 근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
6km: 안개 낀 풍경처럼 내 시야도 흐릿했다. (발이 질질 끌려왔던 것 같다..)
6.51km: 완주!! 정말 믿기지 않았다. '내가 멀쩡히 살아있다니? 그것도 아직 아침 6시라니??'
평소 2-3km 정도 뛰던 나였기에 6.51km를 달렸다는 것은 2-3배를 더 노력했다는 뜻이다.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고, 날파리도 몇 마리 붙어있었다. 당연히 다리는 이미 내 다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척하며 호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왔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상쾌하게 씻고 나왔더니 모두 잠에서 깼고, 함께 조식을 먹으러 갔다.
가족과 함께 조식을 먹으며 얌전히 앉아 있으니
'조금 전에 달리기했던 내가 맞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조금 전까지 나는 정말 전투적으로 달렸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평온함이 어색하기까지 했다. 운동 후 식사는 정말 꿀맛! 이었고, 오전이 되고 오후가 되었을 때 하늘을 보며 오늘 새벽의 하늘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 같은 하늘이 맞을까..? 오늘 새벽의 일이 진짜 오늘이었을까..? 달리던 사람이 정말 나였을까...?'
이 도전은 815마라톤에 대한 압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앞으로도 노력하면 8.15km쯤이야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대구와 가까워 어릴 적부터 자주 왔던 경주, 그리고 빼놓지 않고 보았던 보문호에서 내가 새벽 달리기를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때가 있다. 경주의 보문호에서의 내가 그랬고, 8월 15일에 또 그런 일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날도 이날처럼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2025년 경주 여행은 새벽 러닝으로 인해 더욱더 기억에 남을 녹진한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