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짜리 화분이었다. 가지가 경질인 아주 작은 식물이었다. 꽃집 주인은 과습이 뿌리를 썩게 한다는 당부와 함께 화분을 팔았다. 화분은 사무실 창가에 놓였다. 그 주 금요일, 주말 동안 물을 주지 못할 것을 대비해 물을 듬뿍 주고 갔다. 돌아와 보니 과습으로 잎이 누렇게 떨어져 있었다.
뿌리가 썩을 정도의 과습은 아니었다. 당분간 물을 주지 않고 뿌리를 말리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나 또 월요일, 출근을 해보니 잎이 바싹 말라 오그라들어 있었다. 물을 줘도 잎은 펴지지 않았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마른 잎을 떼어냈다. 또 일주일이 지나니 새싹이 올라왔다.
주먹만 한 식물 하나 기르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걸 주면 뿌리가 썩고, 너무 방심하면 말라죽는다. 내 화분은 표면 20% 정도가 분홍색 자갈로 덮여 있어 촉촉한지 말랐는지 손으로 만져 알 수도 없다. 또 언제 뿌리가 썩고 가지가 마를지 알 수 없어 걱정하자 친구가 흙의 습도를 가늠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쑤시개 같은 걸로 흙을 한 번 찔러서 흙이 많이 묻어 나오면 수분이 있는 것, 흙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수분이 없는 것. 식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법도 배웠다. 가지 겉면의 갈색 껍질을 살짝 벗겨서 녹색이 보이면 살아있는 거라고.
나도 신체반응으로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식물 겉껍질 속을 보면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몸 상태가 좋으면 손발바닥이 촉촉해지고, 좋지 않으면 손발바닥이 건조해진다. 스물 다섯 즈음에 알았다. 남편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습관처럼 내 손발을 만지는데, 내 손발이 늘 수분감이 있는 촉촉한 상태라고 알려줬다. 사람이 손발이 원래 다 촉촉한 거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남편 손발을 만져보니 손등 발등처럼 건조했다. 언젠가 쉬는 날 없이 출근과 약속이 반복되던 날, 평소처럼 내 손발을 만지던 남편이 바싹 말라있다며 놀랐다. 며칠이 지나니 다시 수분이 돌았다. 그 뒤로는 나도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고 싶으면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한다. 오늘은 쉬는 날이어서 좀 촉촉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도 몸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가시적인 변화가 있을 텐데 궁금하다. 내 남편은 피곤하면 발이 아프다고 한다.
내가 내 몸 상태를 가늠할 지표를 알고 있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환경을 가늠할 지표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죽겠더니 지금은 출근하기 싫어 죽겠다. 나에게 최적의 환경은 뭘까. 이쑤시개를 푹 찔러서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단편소설 한 편의 초고를 거의 완성했다. 오늘은 친구와 초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대학원생이어서 논문을 쓰는데, 문장을 붙잡고 있느라 속도가 느리다고 했다. 의도를 충분히 담아내면서, 완성도도 나쁘지 않은 문장을 쓰려다 보니 몇 번이고 문장을 고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그러고 또 퇴고를 하며 그 짓을 반복한다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건 네가 초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초고는 퇴고를 한다는 가정 하에 집필하는 글이고, 어차피 다 고쳐 쓸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채워야 한다. 초고에게 바라는 역할은 단 하나다. 완성도나 가독성이 아니라 날 것. 날 것의 의도, 날 것의 표현. 당장 채워 넣기 버거우면 공백이나 요약으로 채워도 좋다. 막힘없이 쓰고 보니 너무 날 것의 생각이 담기거나 날 것의 딴 얘기가 섞였어도 괜찮다. 그 날 것을 다시 읽고 정돈하고 빼고 채우기 위해 퇴고가 존재한다. 퇴고가 없어도 되는 초고는, 분명 존재야 하겠으나, 많지 않다. 대부분의 초고는 퇴고를 전제하며 태어난다.
내 초고는 거의 완성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날 것의 발상에서 발화한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괄호 안에 담아 둔 에피소드 두세 개가 비어있다. 퇴고를 시작하기 전에 그 괄호 속 에피소드들을 날 것의 문장집합으로 풀어둘 예정이다. 그래서 아직 초고가 완성됐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고, 그 공백을 감안하고도 읽을 수 있도록 결말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애매하게도 '거의' 완성됐다.
6월까지는 소설 일곱 편의 초고와 대본의 1차 퇴고까지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취직을 하니 정말 쉽지 않다. 겨우 초고 하나가 마무리되고 있다. 그래도 올해 안에는 책으로 엮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달 안에 태국어 왕초보 강의 떼기로 마음먹은 건 지켜야지. 생각난 김에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주문해야겠다. 화분은 매주 마지막 출근날 화분받침으로 물이 빠질 정도로 물을 주고, 빠져나온 물은 덜어내기로 했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최적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