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동물의 털(근황과 직장인 토크)
니들펠트와 애견미용
같이 인스타툰을 올리는 친구에게 주기 위해 양모 브로치를 만들었다. 그 친구의 캐릭터 모양으로.
예전에 언젠가 말한 적 있는 내 손에 들어온 지 8년쯤 된 동색 브로치를 사용했다.
글루건은 금속에 잘 붙지 않는다. 무게감이 있는 걸 붙이는 데에는 맞지 않다. 캐릭터 뒤편에 작은 땜빵이 난 뒤에 알았다. 한창 양모를 할 적에는 분명 알았을 텐데, 사용하지 않는 정보는 금세 까먹는다. 결국 순간접착제로 붙였다.
고등학생 때 사서 한 페이지를 칠하고 팽개쳐둔 컬러링북을 한 페이지 뜯어 수제봉투를 만들어 포장했다. 컬러링북, 오래된 잡지 같은 것들을 포장용품으로 모아두고 있다. 부지런히 뭘 만들어야 다 써먹겠군.
양모로 모양을 만드는 공예를 니들펠트라고 한다. 니들을 이용해 양털을 펠트로 만드는 공예.
양모를 다루는 데 사용하는 니들에는 홈이 있다. 이 홈에 털이 걸리면서 수축하며 모양이 잡히는 구조다. 손가락이 찔리기 전까지는 재밌다.
가만히 앉아서 양모솜으로 모양을 잡고, 1구 3구 5구 바늘을 번갈아 가며 움직이고, 보드라운 양모를 덧입히다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칫하면 손가락이 찔리니까 아무 생각을 못하는 걸까? 하다 보면 승모근이 아프다.
19살 때 니들펠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1년 배우고 거의 하지 않았다. 공예협회에서 자격증을 1급까지 따긴 했는데, 그 뒤로는 거의 하지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누누이 얘기해 온 나의 고질병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귀찮아진다. 요즘은 그때부터 꾸준히 이걸 했더라면 이걸로 밥도 벌어먹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 내 실력은 초심자치고는 괜찮은 편이었고, 팔아먹기에는 쪽팔린 수준이었는데, 지금까지 양모를 만지작거리고 살았으면 쪽팔린 실력은 아니었겠지.
친오빠가 키우는 강아지를 미용해 주기 위해 클래스 101으로 애견미용 강의를 듣고 있다.
강아지는 비숑인데, 비숑컷이 제일 어렵다고 해서 그냥 빡빡이로 밀어버릴 생각이다. 내후년이면 비숑컷을 해볼 수 있으려나.
회사 점심시간에 강의를 보면서, 따뜻하고 단단한 강아지를 품에 안고 털을 다듬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진다.
회사에 있으면 좀... 기분이 애매하다. 핑, 퐁 그리고 미처 받아치지 못한 소리 톡, 이렇게 이뤄진 세상에서 살다가 핑, 퐁, 톡, 팽, 팡, 핑핑핑핑핑, 톡탁톡의 세상으로 온 느낌.
핑퐁이 될 때는 좋고, 톡 떨어진 공이야 다시 핑하고 쳐버리면 되니 상관이 없는데,
내가 핑하고 날린 공에 '팽'하고 감정 담은 헛소리를 하거나 '팡'하고 딴소리를 하거나 '핑핑핑핑핑'하고 너무 많은 답을 하거나 다시 띄우기도 머쓱할 정도로 '톡탁톡' 공이 멀어지면... 조금 착잡하다.
업무상 외주업체 사람과 자주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은 팽팡의 사람이다. 내가 A를 물어보면 자꾸 A"를 답한다. 그래서 들어보면 정확히 점검하기 위해 A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어떤... A의 심연에 깔린 나의 의도가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그 의도를 골똘히 생각하다 A"를 답으로 가져온다. A'도 아니고. 한 번은 나한테 "A"가 궁금하신 것 같은데"라고 운을 떼었다가 "아뇨. A'도 A"도 이미 이해하고 있고, 저는 A만 확인을 받고 싶어요."라고 정리당하기도 했다. 잘 맞는 사람이야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진짜 A만 궁금하다. A"가 궁금하면 그냥 A"를 묻는 편이다.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데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과 기싸움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외주업체 사람은 나와는 결이 다른 탓에, 자기가 가져온 A"가 계속 반려당하고 A의 답변만을 요구받다 보면 그는 감정이 폭발해 버리는 것 같다. 때로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업무체계를 보이곤 한다. 그러면 나는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저게 맞나?' 하다가 동료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인데, 내가 이해하기 어렵게 말을 한 걸까요? 그러면 그냥 나와 동료 둘 다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저게 맞나?'하고 고개를 좀 갸우뚱하고 만다.
상사는 '핑핑핑핑핑'의 사람이다. 핑하고 날아온 그의 말에 내가 퐁하고 답변을 하면, 그는... 나무위키 참조문서 나들이 같은 구조로 한참을 말한다. 3할은 유익한 얘기고, 3할은 유익하지만 일과는 무관한 얘기고, 4할은 이미 들은 얘기다. 그 수많은 핑에 밀려 '톡탁톡'하고 나동그라지는 발화가 있다. 급한 게 아니라면 다른 날 다시 띄운다. 줍자마자 띄우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줍자마자 다시 띄우면 '핑핑핑핑핑'을 불러오는 회귀점이 될 뿐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 직장인이란 이런 거였지. 나와는 전혀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이들과 소통하며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것.
근 한 달간은 없는 업무체계를 처음부터 만드느라 아주 바쁘고 정신없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내 옆자리 직원은 자기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일을 하면서, 작가 활동까지 한다. 그 반만이라도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내 일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겠지.
일단 작년에 만들다가 멈춘 친오빠네 고양이 인형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해야겠다. 그러려면 오늘은 방청소를 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