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완 Jun 12. 2024

페이크 플로리스트

선물 일상

요즘은 꽃을 만든다. 내 브런치를 알지만 잘 보지는 않는 어떤 이에게 선물할 목적이다.


코바늘로 튤립을 만들었다. 줄기를 만드는 과정이 제일 번거로웠다. 그냥 꽃철사에 테이프나 감을 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를 했다. 직물에 파스텔이 잘 입혀지지 않아서 쓰지 않는 아이섀도를 가지고 와 칠했다. 파스텔을 곱게 가루 내어 발라보면 좀 다를까 싶어 다음번 꽃에는 파스텔을 가루 내어 발라볼 생각이다.


유행한 지 좀 된 모루를 드디어 사서 장미꽃을 만들었다. 장미꽃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개였는데, 돌돌 말아서 만드는 것보다 여러 개의 모루를 겹쳐 꼬아 만드는 게 더 예뻐 보였다. 모루를 겹쳐서 만든 장미꽃을 남편에게 들고 갔다.

"어때? 예뻐?"

남편에게 내가 처음으로 만든 흰색 장미꽃을 들이밀었다. 남편은 꽃을 아주 잠깐 보더니 말했다.

"상갓집 가? 국화꽃이야?"

두 번째 장미부터는 그냥 모루를 동그랗게 말아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건 확실히 장미로 보인다.


꽃철사와 두께별 공예철사를 이용해서 줄기를 만들고 있다. 끝에는 양모를 말아 만든 꽃봉오리를 붙일 생각이다. 아직은 줄기를 만드는 중이다.

철사를 꼬아서 꽃테이프를 감아 만들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봤는데 마음에 드는 방법을 찾았다. 꽃봉오리를 예쁘게 붙일 수 있을지는 해봐야 안다.


요즘의 나는 가짜 꽃을 만드는 페이크 플로리스트인 셈이다. 요즘은 다양한 공예로 만든 꽃이 유행이던데, 만약 내가 공예 꽃을 만드는 스토어를 연다면 이름을 페이크 플로리스트로 지어야지.




월요일에는 카페에 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밥 대신 빵과 음료를 골랐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친구가 좋아하는 웹툰과 콜라보한 굿즈들이 보였다. 굿즈는 휴대폰 거치대였고, 마침 새로 바꾼 휴대폰 케이스에는 스마트톡이 없어서 필요하던 차였다. 친구 몫까지 두 개를 주문했다. 직원이 창고에서 하나를 꺼내고, 사장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이거 강아지 굿즈 재고 어딨어요? 남은 거?"

창고 안에서 사장님이 뭐라고 대답한 것 같은데, 나는 듣지 못했다. 직원은 나를 DP선반에 데리고 가 DP되어있던 굿즈 상자를 뜯어내 건넸다. 밀봉 스티커가 아직 붙어있고, 밑바닥에는 축 늘어진 실리콘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이게 마지막 재고인데, 괜찮으세요?품절이에요."

"어차피 제가 쓸 거라 상관없어요."

굿즈 두 개를 받아 들고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품절될 정도로 출시된 지 오래됐단 말이야

하기야 다른 굿즈 품목들은 대개 품절이었고, 남아있는 건 거치대와 키링 두 종류였다. 회사로 복귀하는데 왠지 친구라면 이미 이걸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물어보고 살 걸, 아니야 혹시 이미 있다고 하면 남편이나 다른 친구한테라도 주면 되지. 다행이다, 기능성 굿즈라서.


친구에게 프랜차이즈 카페와 웹툰 콜라보 굿즈가 나온 걸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중 거치대 굿즈가 있던데 혹시 이미 샀는지 물었다. 친구가 대답했다.

"그거 첫날에 매진돼서 못 구했어."

출시된 지 며칠이 지났는지는 몰라도, 우리 회사가 있는 매장에는 두 개나 남아있던데. 출시 첫날에 매진된 굿즈가 하필 내 생활권에 딱 두 개 남아있었다니 이게 무슨 행운이람?

카페에 갔다가 네 생각이 나서 사뒀다는 말에 친구는 뛸 듯이 기뻐했다. 느낌표 하나에 10cm를 뛸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 친구는 이미 5층짜리 빌라 꼭대기쯤에는 가있을 거다. 활자로 느껴지는 감정은,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에게 물어보고 퇴근 즈음 다시 와서 샀으면 이미 품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턱대고 산 뒤에 생각을 했으니 선물할 수 있었겠지.

불필요한 소비의 위험이 있고, 돈을 모으기에 좋은 습관도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계산적이지 못한 호의에 기대 사회는 굴러가는 거다, 원래.




장마철이 오기 전에 양모솜을 뭉쳐서 양모볼을 두어 개 만들어 둬야 한다. 장마철이 오면 볕에 빨래를 널기 힘들어질 테고, 그러면 건조기를 돌려야 할 텐데 우리 집 건조기는 스팀식이라 옷에 냄새가 밴다. 아로마테라피용으로 산 오일을 몇 방울 떨궈서 건조기에 돌리면 냄새를 잡을 수 있다고 하니 해봐야지.

모르긴 몰라도 내년 6월이 오기 전에는 퇴사를 하고 싶다. 6월에 일주일 정도 태국에 다녀오고 싶다. 그때쯤이면 내가 태국어 FLEX에 응시를 했겠지? 스페인어 공부하는 친구와 자격증 취득을 두고 경쟁하기로 했다. 일종의 페이스메이커인 셈이다. 근데 경쟁이긴 한데 건 게 없다. 경쟁기준도 모호하고. 흠, 고민을 해봐야겠어. 아, 자격증을 먼저 딴 사람에게 다른 외국어 강의나 학습지를 결제해 주는 건 어떨까? 둘 다 배우는 걸 좋아하니까.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의견을 주면 좋겠다.

이전 13화 요즘의 나는 동물의 털(근황과 직장인 토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