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 Won Sep 18. 2020

친구를 보내고

  며칠 전 골수암 말기라는 병명으로 30년 지기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이민 초창기 때 만난 그녀는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 허리가 아픈 거라며 병원에 가는 대신 일반 진통제만 먹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골수암 말기에 척추암까지 번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손 쓸 방법이 없다며 일주일 후 그녀를 호스피스로 보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먼저 집으로 갔다. 죽음을 감지 한 그녀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집안 청소를 했다. 본인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집안 청소를 하면서 느꼈을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울었을 그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기본적인 항암치료도 받지 못한 상황이 된 그녀의 황당한 소식에 본인은 물론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은 페닉 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했지만 집도 사업체도 같은 동네에서 했다. 같이 겪은 힘든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온 날들이 떠올라 그녀의 아픔이 더 억울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길은 한 시간 거리인데도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두려웠다. 나에게 소식을 알려준 친구와 호스피스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린 우선 울음을 멈춰야 했고 진정해야 했다. 


  코로나 19로 까다로워진 절차를 끝내고 그녀의 입원실로 가는 길은 소식을 들었던 순간보다 더 무섭고 슬펐다. 그녀의 입원실 문은 열려 있었고 방문객이 다녀간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내 눈에 들어온 그녀가 너무나 작아져 놀랐고 얼굴은 병색이 짙어 노인네로 변해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에게 "나 왔어"라고 말하자 힘겹게 눈을 뜨며 "먼데 왜 왔어"라고 말하곤 눈을 다시 감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주삿바늘로 멍든 손을 쓰다듬었다. 너무 야윈 그녀를 자세히 보는 건 고통이었다. "추수감사절에 네가 해준 터키 먹고 싶은데 해줄 수 있지?" 내가 묻자. 그녀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통증이 심해 모르핀을 맞다 보니 잠이 의지에 상관없이 잠이 오나보다. 


  이렇게 사람도 잘 알아보는데 항암치료조차 받을 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 조금 억울했다. 허리 아프다고 시중의 진통제만 복용하고 병원엘 왜 안 보냈는지 괜스레 그녀의 남편이 야속했다. 그래도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씩씩한 성격이며 그녀의 손에 움켜쥔 묵주를 보니 희망이 생겼다. 면회 제한시간과 병실에 두 명 이상 있을 수 없어 같이 간 친구에게 양보하기 위해 방을 나오면서 "꼭 터키 만들어줘야 해 알았지?" " 내가 널 사랑하는 것도 알지?"라고 말을 건네자 답변 없이 또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고 나와야만 했다.


  호스피스로 옮기고 몇 주 후 그녀가 숨을 멈췄다는 소식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장례문화도 많이 축소되어 삼일장이나 오일장 대신 마지막 날 하루에 장례미사와 하관식을 하면서 그녀와 작별해야 했다. 그것 또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인원 제한이 있다는 소식에 나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곱게 화장을 해 놓은 얼굴이 낯설었고, 손에 꽉 쪘던 묵주가 헐렁한 채 반쯤 열린 그녀의 마지막 모습과 작별을 해야 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장지로 옮겨지기 위해 그녀의 관이 성당문을 벗어나야 할 때 친구들은 그만 감정을 억제 못하고 통곡하고 말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차 안에서 한 참을 울다 보니 장지로 가는 행렬을 놓쳤다. 장지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성당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같은 골목을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간신히 도착한 묘지에선 벌써 하관식이 시작되었다. 유난히도 따스한 대낮에 그녀의 관은 서서히 땅속으로 내려가고 장례식을 주관하는 분은 손님들이 이곳을 벗어나야 된다며 다그친다. 코로나 19로 제대로 작별도 못하는 친구의 장례식이 서러웠다. 그녀를 땅속에 홀로 두고 가야 하는 시간이 오자, 나도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묘지가 안 보일 때까지 차를 멈추어 손을 흔들고, 또 손을 흔들면서 그녀와 작별하고 돌아온 그날 밤 온몸에 열이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이민 와서 고생만 하다, 여행 다니며 즐길 나이에 가버린 그녀가 가엽다. 같이 고생하던 시절에 서로 의지가 되었던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우울하다. 조금은 일찍이지만 친구를 보내는 세월이 어느 사이 되었다.  언젠가는 나 또한 겪을 죽음이지만 나이를 먹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건 언제나 아프다. 

이전 17화 연어가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