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 미향
이른 나이에 반 은퇴? 를 결정한 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이뤄줬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부에게도 일이 있다는 기쁨에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경제 불황도 원인이 되긴 했지만 사업주 변경이 주 요인이다. 매매가 성사돼야 수수료를 받는 부동산 중개업도 했지만 가장의 입장에선 안정적으로 주급이 나오는 곳이 편했다. 계속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취업문제가 힘들어진 건 나뿐 아니었다.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주 사용하진 못했어도 부동산 라이선스가 있다는 건 위안이 되었다. 당분간 휴식은 물질적인 면에서 힘은 들지만, 투 잡을 뛰느라 신체적으로 약해진 상태에 있었기에 필요하기도 했다. 병치레는 결국 훗날 나의 몫이기에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현명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후에도 자존감 있게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이 나의 노후를 위해 많은 것들을 배워두면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웰빙 하였으니, 이제 웰다잉을 준비하는 적합한 나이가 50대가 아니겠냐는 생각에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행동에 옮긴 건 한국에 계신 친정 노모와 추억 쌓기다. 친정식구와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겁고 행복해서 그들과 있으면 마음의 잔병이 사라지고 기운이 난다. 병원 가는 것도 미국보다 편하고 우수해서 이참에 고질적인 병도 고쳐야 하기에 한국 여행을 선택했다. 다소 부담은 되었지만,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한 시간은 예전의 여행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비록 치매로 대화 후 바로 많은 부분을 기억 못 하지만, 엄마와의 여행이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대화를 했다. 우린 먼저 가버린 자식들, 남아서 외로울 자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엄마의 쳐진 몸을, 숱 없는 머리를, 얼마 남지 않은 치아를 눈물 없이 보기가 힘들었다. 자주 흔들리는 엄마의 눈동자 속에 비추는 나의 모습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나는 엄마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몸의 잔병과 마음의 잔병도 치료를 받았다. 이제 조금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식구들의 응원은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비록 긴 여행으로 부담스러운 지출을 했지만, 그 지출은 내 생에 가장 알찬 금전적 지출이었고, 당분간 휴식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이제 본격적인 우아한 가난을 시작하려면 모든 생활방식을 바꿔야 했다. 우선 그동안 미뤘던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집안에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물욕과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고 삶의 질을 위해 그동안 미뤘던 배움을 준비했다. 경비가 적게 들고 질적인 수업을 받는 건 힘든 현실이다. 나의 의지에 따라 질적인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연습과 예습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배우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져 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클래스에서 서예, 글쓰기 그리고 사진, 성경공부를 택한 건 우선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많은 돈이 안 들어가는 수업이라 더 좋았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봉사하는 분들의 자세와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헛된 노후가 되지 않기 위해 삶의 가치에 대해 가르쳤다. 가르치는 본인도 즐기는 모습에서 나도 언젠가는 봉사자가 되면 좋겠다는 포부도 갖게 되었다. 아직도 노후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이른 시니어이지만 멘토를 만난 듯, 길잡이를 얻은듯하여 배움이 즐겁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내게 조금이라도 물질이 더 있다면 자녀에게 도움이 될 터인데 내가 일찍 뒷전으로 물러선 건 아닌가에, 너무 빠른 건 아닌가에 의문도 생기고 자녀에게 미안함도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언젠가 다시 일을 할 것이다. 지금은 조금 쉬었다 가는 길이고, 그 길목에 있다. 청소년 때 배운 지식은 그동안 사회와 가정에서 잘 사용했다. 이젠 노후를 위해 공부해서 늙어가는 미학에 사용하려면 지금이 좋은 시기다. 책을 벗 삼고 취미에 심취하다 보면 생기가 돌 다 가도, 다 내려놓지 못한 물욕으로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며, 또한 나는 불안함을 반복적으로 느낄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나에 대한 기억중 최고는 부엌에서 밥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음식 냄새가 잠결에 도 좋았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이 추억하는 그 장면은 내가 어릴 적 친정엄마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 시니어가 되어가는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당분간 휴식으로 인해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이 시기가 감사하다. 취업 준비를 하는 자녀, 새집으로 이사가 가정을 꾸민 자녀, 그리고 본인이 가장이길 밝히는 자녀를 위해 기도와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빠가 떠난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슬픔은 각자의 몫으로, 기쁨은 서로의 몫으로 어려움을 잘 견뎌주었다. 아이들 덕에 나 또한 잘 버틴 것 같아 고마운데 엄마인 내가 그늘이 되어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는 말에 부끄러웠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슬픔을 견뎠고, 서로의 기쁨에서 위안을 받았던 시간 들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나는 늘 기도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의 반 은퇴 같은 긴 휴식에 망설임 없이 축하해해 줬다. 이제 쉬셔도 된다는 그 말이 왜 이리 고마운지….
당분간 휴식을 통해 나는 누구나 되는 노인 보다,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서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는, 자녀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