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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Oct 11. 2020

잎 맥


  재택근무하는 아이들로 인해 삼시세끼 밥상을 차려야 하는 요즘 손이 마를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같은 반찬을 하루 종일 올리기도 미안하고 매번 바꾸는 건 더 어렵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면서도 같은 반찬이 계속 올라오면 말은 안 해도 먹는 모양새가 틀리다.  특히 육류가 없으면 더 어렵다. 코로나가 기승을 떨어도 미국인들은 마스크에 거부감이 있는지 동양사람만큼 착용하지 않는다. 천식을 오랫동안 앓았고, 여름에도 감기를 달고 살기에 마트 가는 게 사실 두렵다. 대부분의 식료품은 미국 마트에서 아이들이 구입하지만,  좋아하는 삼겹살이나 고추장, 된장을 사려면 한국식품에 가야 한다. 코로나가 터지자 사재기하는 미국 사람 때문에 미국 식품점에서 육류를 찾기 어려운 때였다.


  나는 가족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비롯 한국식품을 사기 위해 마스크와 장갑 그리고 안경까지 쓰고 마트에 갔다. 다행히도 마트 안의 손님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어쩌면 입구에서 마주친 채소 모종이 마음을 편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트에 온 이유를 잊고 작은 새싹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몇 개의 모종을 카트에 실었다. 카트 안의 모종을 보면서 장을 보는데 자꾸 웃음이 나고 설렜다. 나는 식물을 키워본 경험도 없으면서도 호기롭게 상추, 호박, 아삭이 고추 그리고 깻잎 모종을 카트에 실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농촌에 사는 일가친척이 없다 보니 자연과 친하지 못하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정원의 식물을 관찰하면서 일지를 쓴 기억이 있다. 조금 커서는 빈 병에 물을 담고 그 위에 양파나 고구마를 올려놓고 관찰한 것이 전부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난생처음이라 걱정도 됐지만, 흥분도 됐다. 우선 그들의 보금자리를 위해 화분과 흙을 샀다. 흙을 파는 상점에 갔더니 그곳엔 더 많은 새싹과 꽃들을 보자 코로나 19로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열렸다. 작은 정원에 심으면 좋을 수국과 라벤더도 카트에 담고 싶었지만, 경험이 없으니 다음으로 미루고 쉬운 채소 모종에 필요한 흙과 화분만 샀다. 


  인터넷을 통해 겨우 분 갈이만 했을 뿐인데도 커다란 사과나무라도 심은 양 어깨가 으쓱했다. 경험이 없다 보니 4월의 봄도 춥다 여겨 집안에서 모종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햇빛의 이동에 따라 화분의 위치를 바꿔주면서 관찰하는 맛이 쏠쏠하다. 갓 난 아기 보듯 즐겁다. 손바닥만큼 작은 식물들이 코로나 19에 상관없이 자기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하면서 기특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은 나에게만 보이는지 걸어 다니는 사내아이들은 새싹에게 수시로 말을 거는 나의 모습에 빙그레 웃기만 한다. 반려식물이 되어가는 식물을 자세히 보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삶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식물의 잎은 햇빛을 받아 식물 전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광합성이 작용해 포도당과 전분을 만들어 잎맥을 통해 다른 조직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작은 주름들은 큰 주름으로 연결되어 잎자루에서 줄기를 따라 땅속뿌리까지 구석구석 광합성을 공급한다. 지상에서 받은 영양분을 뿌리는 또 땅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줄기를 거쳐 잎맥으로 전달하면서 자란다. 한 뼘도 안 되는 이 작은 식물의 잎에는 수많은 잎맥이 있는데 어느 하나 제 몫을 소홀히 하는 게 없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삶에 그동안 충실했던가 묻곤 한다.  살아오면서 활짝 핀 일상도 있었지만 굴곡진 일상도 많았다. 내가 민감했을 때도 있고, 그러려니 지나쳤을 때도 있다. 유독 큰 주름이라 생각할 땐 무겁고 힘에 겨워하거나 원망했던 일들도 있다. 식물의 잎맥처럼 내 삶에 생긴 주름도 조금씩 깊이가 달랐다. 그 크고 작은 주름들은 삶의 광합성을 만들어 마음속 구석구석에 머물며 흔들리지 않게 나의 뿌리에 영양을 줬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생긴 지금의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삶의 주름 중에 제일 굵은 모양일 수도 있다. 주름이 굵으면 영양소를 더 많이 만들어 내 몸속 영혼의 뿌리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잘 버티는 모종들처럼 내가 할 일은 잘 버티는 일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게 해 준 새싹들이 고맙다.


  온종일 아이들 식사 준비하듯 입양한 새싹들에 그들의 음식인 햇빛과 물을 주면서 혼자 말을 거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자주 그들에게 묻는다. “이제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니?”라고 물으면 “한 뼘도 안 되는 우리도 제 역할을 하는 데 인간은 문제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위로를 받는다. 이들과 봄맞이를 잘해서 여름과 가을도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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