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부스럭
잠을 못 이루는 아이가
이불자락을 덮었다 벗었다
의미 없는 움직임이 계속된다
딸깍
어둠 사이로 작은 빛이 들어오며
여름밤 잠 못 드는 아이를 빛으로 불러내 본다
삐비 빅 드르릉
현관문이 열리며 맞이하는 여름밤의 공기
살짝 차갑기도 하지만
잠옷 바람으로 나와도 충분한 온도와 습도
여름의 밤이 열린다.
달의 빛이 열린다.
엄마,
오늘은 보름달 사이 달이야.
아직은 보름달이 조금 안되었잖아.
내일은 보름달이 뜰 거야.
아이가 처음 만난 여름의 달은
보름달 사이 달이 되었다.
아이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새로운 여름밤의 기억이 시작되었다.
"엄마, 저 달은 보름달이야? “
“음, 보름달보다는 조금 덜 채워져 있네, 내일이면 보름달이 되겠다.”
“아! 엄마, 나 이 달 이름 알아! 이건 보름달이 아냐!”
“응? 무슨 달일까?”
상현달이었나 하현달이었나 보름달 말고는 늘 헷갈리는 달의 이름을 곱씹어보았다.
“이건 보름달 사이 달이야. 보름달이 되기 전 사이라서, 보름달 사이 달이야.”
곱씹던 달의 이름을 얼른 접어두었다. 그래. 아직은 이 달의 이름은 보름달 사이 달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둘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잠을 같이 잔 첫째는 오늘따라 유난히 잠이 들지 않아 했다. 9시에 들어간 취침시간이 10시가 되고, 둘째는 잠이 들었다.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해 뒤치락거린다. 나도 고역이지만 자기도 잠을 이루려는데 대관절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뒤척이다가 힘 빼고 잠들 것 같다. 나도 애들이 잠들면 버리려고 했던 아직 내다 버리지 않은 음식물쓰레기가 떠올랐다. 둘째와 남편은 이미 잠들어있으니, 어차피 깨어있으니 첫째에게 사인을 주고 방을 조용히 나온다.
“잠이 바로 안 와? 그럼 엄마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갈 건데, 같이 나갔다가 올까? 그러고 나서 다시 자볼까?”
“지금 11시인데 나가도 돼? 우와, 좋아!”
시계를 확인하더니 11시인걸 확인하고, 11시에 나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들뜬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여름밤이잖아. 하루 정도는 늦게 자도 되겠지. 낮에는 온종일 툭탁거려서 엄마가 최악이라고 하는 첫째의 민심도 돌아볼 겸 밤 산책을 나섰다. 밤 11시에 잠옷만 입고 슬리퍼만 걸치고 나가도 되는 여름의 밤. 아이와 한번 나가려면 이것저것 입혀야 할 게 많은 겨울에 비해, 아이와의 여름의 산책은 하늘거리는 인견 잠옷처럼 한 결 가볍고 홀가분하다. 음식물쓰레기 통을 들고 엘리베이터 1층을 눌렀다. 평소에도 타던 엘리베이터지만, 아이의 눈은 미지의 탐험을 떠나는 것처럼 반짝였다. 텁텁했던 방문을 열고 나오니 맞게 되는 바깥바람이 여름 잠옷 바람으로 맞기에는 살짝 차가워서, 내가 두르고 있던 앞치마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우리는 한 몸이 되어 뒤뚱뒤뚱 쓰레기통을 향했다. 그 조차도 재미있다며 깔깔대는 아이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본 달. 보름달 사이 달이다.
이 공기. 여름밤에서만 맡을 수 있는 해방의 공기. 대학생이 되어서 맥주와 치킨을 들고 탁 트인 잔디밭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 몇 캔과 편의점 라면 후식을 먹고도 놀기 좋은 여름의 밤. 그때는 어떤 달이었는지 떠올리다 같이 떠다니는 추억들에 피식 웃음이 난다. 버스가 끊기고 나서도 밤새 놀 수 있던 청춘의 시절은 여름과도 같았다. 새벽 첫 차가 올 때 까지는 어디도 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자유를 얻은 청춘은, 여름 새벽의 공기를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밤 12시가 되면 딱 놀기 좋은 시원한 날씨. 병맥주가 주는 청량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새벽 3시부터는 다른 옷이 하나 더 필요할 정도로 살짝 추워진다. 그때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잠이 깨서인지, 새로운 공기가 느껴진다. 아 물론 취향에 따라 소주로 몸을 데우기도 한다. 달이 깊어지는 시간. 그 시간은 속마음이 드러나는 마법의 시간이다. 새벽이 주는 용기랄까. 못다 한 사랑의 고백도, 마음에 담아둔 속상함도, 세상에 외치고 싶던 억울함도 그 시간에 깨어있는 이들은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속사포로 마음을 말한다. 그러다 새벽 5시, 달이 들어가고 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마법은 풀린다. 다시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쭈뼛대며 첫 차에 몸을 맡긴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여름의 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에는. 여름의 상징은 쨍쨍한 햇볕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름은 달이 빛나는 여름의 밤이다. 겨울은 추워서 밖을 나가도 목적지로 빨리 향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지만, 여름의 밤은 걷다가도 하늘을 보게 되는 여유로움이 있다. 그리고 달빛을 오래 볼 수 있는 한적함은 여름의 밤이 선사하는 마법 같은 선물 같다.
“엄마, 그런데 조금 바람이 추워”
달빛이 주는 추억에 빠져 산책을 하다 보니, 아이의 어깨를 덮었던 앞치마가 어느새 흘러내렸다.
“그럴 땐,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 우리의 온도를 서로 나누자, 어부바!”
나의 등과 아이의 배가 맞닿으며 서로의 온도를 온전히 느끼며, 남은 산책은 아이를 등에 업고 걸었다. 둘째에게 뺐겼 던 엄마의 등을 이 밤 시간 독차지하는 게 신났는지 아이는 연신 재잘거렸다.
“엄마, 그거 알아? 내가 보름달 사이 달을 업고 있다? 계속 내 등 뒤에 보름달 사이 달이 있어!”
아이도 오늘부터 보름달 사이 달과 여름의 밤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