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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15. 2020

임신, 언제 알려야하는걸까

chap1. 임신부터 시작되는 워킹맘의 고민

"꺄, 두줄이다!"

"축하해, 사랑해"

"어머, 정말 축하해~! 대단하다 우리 딸!"


신혼 1년을 보낸 뒤 계획했던 임신이

 생각만큼 딱 떨어지게 바로 되지는 않아서

초조했던 날들을 보낸 뒤에 얻게된 임신소식이었다.


첫 아이라 테스트기에 두줄을 보고

바로 병원을 가서 확인한뒤

가족들과 임신준비를 알고있는 지인들에게

기쁘게 알리며 축하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축하인사를 받고 감사해하고 기뻐하다가,

문득 멈칫하게되었다.


'회사에는 어떻게 알려야되지?

두줄나왔다고 얘기할 수는 없잖아.

육아휴직은 얼마나 쓸 수 있지?

 회사에서 쓴 사람이 별로 없는데

얼마나 쉴수 있다고 얘기해야되는걸까?

쉰다고 하면 짤리는거아닐까?

올해에 승진대상자인데,

이걸로 승진못하는건가 그런것도 있다던데.

내 밑에 사람도 없는데

이 일을 할사람이 없는데 어쩌지.

애는 언제부터 어린이집을 갈 수 있는거지.

도우미나 가족들 케어없이 어린이집에서만 있어도 괜찮을까'


여러가지의 고민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축하의 기쁨만큼이나

앞으로 바뀌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갔다.


'임신 언제 회사에 알려야할까'

검색창에 검색을 시작했다.

아직 회사에 알린상태도 아니니

회사 선배한테 물어볼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들 중에 육아휴직까지 쓴 케이스도 드물었다.


 맘카페라는걸 그때 처음알게 되었고,

의지할 정보도 거기밖에 없게 될 정도로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월급이 밀리는 곳도 아니고

화장실청소를 내가 해야되는 곳은 아니다.

나름 규모있고 탄탄한 회사였지만  

출산휴가로 3개월쓴사람이 대부분이고,

그 이상의 기간으로 육아휴직을 쓴 사람은

1-2명으로 결국 나중에는 퇴사를 선택하는 통계를 가진 중소기업이었다.

이런걸 물어볼 선배도 동료도 지인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내가 인사팀이라는 아이러니.

그래서 더 너무 잘 알고 있는 현실들이었다.


D-day는 5개월차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통을 뒤져서

가장 합리적이고 서로 배려할 수 있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기간은

임신 4-5개월차라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에서도 임신 3개월차까지를 안정기로 부르기도하고

그 안에 유산등의 불가피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기도해서

절대안정을 해야하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때

굳이 알리고 싶지않은사람들에게까지 알리고싶지않은

번거로운 감정을 피하고싶은 개인적인 판단도 있었다.


게다가 버스+지하철+환승+지하철의

편도 1시간30분, 왕복3시간의

출퇴근 루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우지만 이런부분이 염려되어

내심 확실하게 되었을때 알리고 싶었다.


번복되는 행정적인 절차가 그려져서

나의 안정보다 그 절차가

더 껄끄럽게 느껴지게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모성보호휴가나 이런게 나와있지만,

당시에는 그런게 없던 시절ㅠ)


그렇게, 5개월간 나의 임신은 숨겨야하는 사실이 되었다.

축하받고 있어야할 임신이,

정작 8년간 매일 출근한 직장에서는

비밀로 해야하는 그 짧은 몇달에 많은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이것이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건가,

뉴스로만 보던 '워킹맘의 고민''워킹맘의 눈물'이라는 타이틀이

피부로 와닿을 때는 또 달랐다.


임산부배려자리따위는 사치다.

사람들사이에껴서 서서가기도 벅찬

분당선+2호선 출근 지옥철에서

 빈혈로 기절할꺼같아 내리려고 했지만 사람에 치여서 못내려서

앞사람 가방에 기대서 두코스 더 가서 내리기.

정장을 입어야 하는 일이 많은 직무의 특성상

교육 강의있을때는 배 집어넣기.

입덧 시작으로 사무실 여자화장실에서는 티가 날까봐

한층 내려가서 화장실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기.

조금이라도 허기가지면 입덧이 더 심해지는

먹덧+토덧의 콜라보여서 기미가 올때면

1층 편의점에서 산 계란을 화장실에 들어가서 까먹었을때는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하는 현타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근무했고,

내가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감사한 회사였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대기업의 복지기사나

 의무화된 육아휴직 시스템을 만들어낸

기업의 사례들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했다.


솔직한말로 내가 있는 곳에 따라

 내 뱃속의 아이도 보호받는게 달라지는게

벌써부터 이러는가라는 삐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늘 강조했구나라는걸

임신하고 피부로 느꼈다 할 정도로 삐딱선을 탔다.

뉴스로만 보던 현실들에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자료실에 김밥 놔뒀어,가서 먹고와

공교롭게도 아직도 임신은 비밀인 날들 중

회사의 이사도 겹치게되었다.

포장이사라고는 하지만 인사팀 재무팀은

 내 짐만 옮겨서 끝나는게 아니라

회사 보안서류들과 잡다한 임원방정리까지도 마무리를 해야되었었다.

먼지가 날리고 짐을 들고 옮기고 해야되는 과정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걸레를 들고 이리저리 먼지구석을 닦으면서

임신한 사실을 아직 알리기 전이기때문에

평소처럼 행동해야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나의 임신을 알고있던

다른팀 선배가 눈치껏 나랑 같이 일하면서

많이 도와줘서 그나마 티를 덜내고 일손을 보탤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입덧타임이 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속이 비면 바로 토덧인데

보통 2-3시간단위로 뭐라도 넣어줘야되는데

 아직 점심먹으려면 시간이 남았고,

간식을 먹기에는 다들 열심히

 책상배열하고나르고 있어서 눈치가 보이는 때였다.

게다가 이사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오픈된 공간이라 숨어서 먹을곳도 없었다.


" 자료실은 이사짐 차 올때 뺀다고하니까

아무도 안들어갈꺼야,다들 책상옮기는데 가있어.

 거기 김밥놔둬으니 얼른 먹고와"


사각지대의 빈방의 자료실에

이따가 점심에 먹기로 해서 사가지고 온 김밥 두줄을

선배가 빼돌려서 놔뒀다며 토덧타이밍 전에 갔다오라고 했다.


그때 재무제표가 쌓여진 자료실 방에서 숨어서 김밥을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까지 왜 해야되나 현타가 오기도하면서

그 선배가 너무 고마웠다.

눈물젖은 김밥이란 이런건가 라는 생각에

고마우면서도 눈물나고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까지해야돼?

쓰다보니 구구절절 신파에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라떼의 이야기일수 있지만

나쁜회사도 아니었고,

내 자리가 그렇게 거지같은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잖이 서러울때가 있었고

억울하다싶을때가 있었고,

움츠려들때가 있었다.


임신소식을 알자마자 이런 달라진 현실들이

누군가에게는 내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 시기 부터 꺼낸 이유는

 나같은 누군가가 있을 수 있어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게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부족이었다.


앞으로 워킹맘에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현실에 대해

주변에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워킹맘의 롤모델도없었고,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빠른 임신이라

워킹맘의 생활을 옆에서 볼 수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검색으로만 뉴스기사로만 카더라 소식으로만

워킹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 스스로가 위축되기도하고, 혼란스럽기도하고,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 D-day

그렇게 임신호르몬의 지배를 받으며,

구구절절한 신파를 찍어가며 4개월을 보냈다.

 

태아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곧 인사발령 시즌이 오기도했기에

말해야할 때가 왔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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