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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의 무게, 말로 꺼내면 가벼워진다

현장 속 감정노동과, 감정기록을 통한 자기회복 이야기

by 하룰

“당신은 왜 내 말을 제대로 안 듣는 거야!”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나는 침착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죄송해요,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자세히?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그분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속으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서운함이 있었다.
하지만 미소는 절대 멈출 수 없었다.
‘이 감정, 내 안에서만 불타게 해야 해…’




상담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마음은 너무 무거웠다.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말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나?’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감정노동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까, 아니면 감정의 감옥일까?”




기억에 남는 현장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화기 너머로 한 대상자가 화를 터뜨렸다.
“당신은 왜 매번 똑같은 말만 해!”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말했다.
“말씀해 주세요.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내가 뭘 말해야 만족하는 건데?”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손을 잠시 멈추고,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B 대상자분, 화가 극도로 올라있음. 나는 침착하게 대응. 내 마음은 타격. 기록 필요.’




노트에 적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가 분노로, 서운함이 무거운 짐으로 내 몸을 짓누르던 것이
한 줄, 한 줄 적히면서 조금씩 풀리는 것이었다.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구나.’




“나도 힘들다… 인정해도 될까?”
내 안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속삭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종이에 적었다.
‘오늘 느낀 감정: 분노, 서운함, 피로. 대응: 침착, 웃음 유지. 느낀 점: 무거움 감소.’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분산되었다.
현장에서 겪었던 긴장과 부담이 기록을 통해 정리되면서,
마치 하루 동안 쌓인 돌들을 한 줌씩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감정노동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과 기록으로 감정을 꺼내는 순간

무게는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트에 적는다.
“그때 느낀 감정을 그대로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채
기억 속 현장을 떠올리며 다음 순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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