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가?
타인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가?
“괜찮으세요?”
하루에도 수십 번 묻는다.
그 질문은 내 일의 시작이되고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에게 그 말을 건네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꺼낸다.
“괜찮습니다, 저는요.”
그 말은 내입을 막기도 전에 거의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온다.
나는 타인의 상처를 듣고,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불안을 달래고, 분노를 견디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조각을 찾아내는 게 내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의 아픔을 감싸 안는 데엔 너무나도 능숙하지만
내 마음의 피로에는 늘 서툴고 냉정하다.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는 대상자들의 이름이 맴돈다.
“그분은 오늘 하루를 잘 보내셨을까? 견뎌 냈을까?”
“내가 그때 다른 말을 했다면 조금 나았졌을까?”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다.
그런 밤이면 문득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대체로 ‘도움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너는 참 든든하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
그래서 언제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이 누군가의 기대를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나는 버텨야 한다.”
이 한 문장은 마치 방패처럼 우리를 지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우리를 고립시킨다.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어느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굴레로 바뀌어버린다.
하지만 사실은 도움을 받는다는 건 의존이 아니다.
그건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나도 힘들다’는 고백은 약함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한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보는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도움을 요청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만큼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도 중요하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결국 더 오래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이제 나는 누군가 내게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조용히, 그러나 정직하게 이렇게 답하려 한다.
“오늘은 조금 괜찮지 않네요~.”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무너진 균형을 천천히 되돌려 놓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잊지말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도, 도움받을 권리가 있다!”
“강한 사람은 혼자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