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백수일기 32

by 미지

스물, 인생에서 체육 수업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뛰지 않았다. 아주 가끔 버스를 놓치기 일보 직전일 때 삼십 초 정도만 뛰었다. 십 년 가까이 달리기를 타임캡슐에 넣어둔 추억의 물건 취급하며 살았다. 헬스장을 다닐 때조차 러닝머신의 속도는 최대 6.5, 경보 수준이었다.


러닝 크루의 유행이 한바탕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러닝의 좋은 점을 말하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계속 떴다. 온 세상이 나에게 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뛰어보기로 했다. 올해 초 아주 추웠던 어느 날 무작정 뛰러 나갔다. 러닝화도 없었다. 다른 장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머플러로 머리와 귀, 목을 칭칭 감아 찬바람을 막았다. 핸드폰과 무선 이어폰만 챙긴 채 밖으로 나갔다. 심박수도 재지 않았고, 러닝 기록을 측정하는 앱도 깔지 않았다. 몹시 추웠던 탓에 운동장을 개방한 집 근처 학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뛰다가 숨이 차면 걸었고, 그러다가 다시 뛰었다. 몸에서는 열이 나 땀이 날 것 같았는데, 얼굴에 닿는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얼어붙을 것 같은 날씨와 차가운 겨울 공기를 느끼며 뛰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첫 달리기 후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계속 뛰고 싶었다. 이후 러닝화를 사고, 런데이 앱을 깔아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뛰기 시작했다. 무릎이 살짝 불편하기 전까지 몇 달간 열심히 뛰었다. 정형외과에 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불편한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만 잠시 쉰다는 게 몇 달이 지나갔다. 무릎은 아주 멀쩡했지만 너무 더워서, 비가 와서.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었다.


한동안 아주 덥더니 오랜만에 조금 기온이 조금 내려갔다. 더는 댈 핑계가 없다. 다시 뛸 때가 되었다. 여름 운동복이 없어서 무신사에서 2만 원을 주고 산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대충 꺼내 입었다. 계절이 바뀐 탓에 러닝화와 스포츠 양말의 느낌이 아주 답답했다. 오랜만의 달리기라 런데이의 '30분 달리기 도전' 코스를 1회 차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덥고 습한 날씨 덕분에 금방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 겨울의 시린 공기가 그리웠다. 런데이 아저씨의 목소리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아주 천천히 뛰었다. 땀이 계속 났다. 집에 돌아가 제로 토레타를 벌컥벌컥 마신 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정말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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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러닝을 시작할 때 목표는 속도와 관계없이 30분 동안 쉬지 않고 뛰는 것이었다. 다시 런데이 1일 차로 돌아왔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뛴다면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30분을 줄곧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취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나가 뛰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일단 뛰어보자. 건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니까. 회사를 다니며 찐 살이 빠진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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