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33
3년 전,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첫 선생님은 몇 가지 잊지 못할 말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생긴 대로 피아노를 친다'라는 말이다. 오랜 수련에도 그 사람이 가진 성질을 다 지울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많은 피아노 취미생 사이에서도 떠도는 말이다. 나는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질주하듯 아주 빠른 속도로 쇼팽의 스케르초를 연습하는 옆방 취미생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 메트로놈을 끄는 순간 제멋대로 빨라지는 내 손가락을 멈추고 싶을 때, 생긴 대로 살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친구를 볼 때, 그리고 생김새를 잊지 않는 친구를 볼 때.
오늘은 나의 많은 친구들 중, 가장 생긴 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친구를 만났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물질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어떤 불멸의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거스를 수 없는 오랜 역사에는 항상 반복되는 부조리가 있고, 돈의 흐름이 있고,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무고한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있다. 친구는 그 가운데에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같다. 아마 그녀에게 어떻게 살고 싶냐고 질문하면, 몇 번을 질문하더라도 같은 답이 돌아올 것이다. 언제나.
약속을 앞두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비가 오다 말다 하더니,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저녁에는 결국 커다란 장우산을 들고 밖을 나서야 했다. 연남동의 홍콩 음식점에서 마파두부와 딤섬, 고기 튀김을 먹었다. 날씨 탓인지 뜨끈한 마파두부가 정말 맛있었다. 저녁 식사는 친구 어머니께서 사주시는 거라고 했다. (친구)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며 가게를 나서는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폭우다. 혹시 몰라 일 년에 두 번쯤 신는 레인부츠를 꺼내 신은 보람이 있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카페로 이동해 망고 케이크를 먹는 동안에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 확실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줄곧 삶의 방식이 확실하다면 고민할 것이 적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나의 기준이 불명확했으므로. 그러나 현실은 늘 녹록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짐을 지고 살 수밖에 없다. 무게가 다르고 모양이 다를지언정 짐은 짐인 것이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답게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는 오히려 나의 방식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친구에게 백수 생활의 소회나, 회사 시절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늘어놓았다. 말을 하면서 불행과 분노는 아무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대신에 기쁨, 사랑, 행복, 희망, 위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집에 가는 길에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은 과분하다. 이런 질문에 나는 무한하고 거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범위를 좁히자. 그럼 나는 3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을 알아야 이 시절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말하고 싶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쉬지 않고 구해야 할 앎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