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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 Jul 17. 2023

어느날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7

공황장애 환자의 일기 쓰기

 이전까지의 글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감상을 많이 배제하고 글을 썼다. 공황장애에 대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혹시나 스스로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의 트리거를 당길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공황장애에 대한 나의 경험담만을 전했으니 내가 그동안 느낀 감상과 그를 기록한 일기에 대해 공유한다.

 일기가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사람에 따라 개인차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후 읽거나 활용해 주길 바란다.


 휴직을 하고 가장 많이 한 건 글을 쓰는 행위였다. 그다음이 심리학 책, 뇌과학 책을 읽는 일이었다.

많은 자기계발 유튜브, 자기계발 서적은 일명 '갓생'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메모를 꼽는다. 신기하게도 많은 심리학 책, 뇌과학 책에서도 글쓰기의 중요성을 아주 많이 강조한다. 운동 다음으로 강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의 객관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한 파악 외에도, 스트레스의 발산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그전까지 일기를 화풀이와 한탄의 감정으로 빼곡히 채워 넣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좋은 일과 좋은 감정 역시도 글로 남겨도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일기를 쓰는 타입은 두 타입이 있다고 한다. 그날 한 일을 목록으로 정리해서 오늘은 무엇을 했다고, 과제 해결형의 메모 타입과 하루 동안 느낀 감정과 감상만을 다양한 표현으로 기록하는 타입.

 나는 후자에 가까웠으며, 대부분 부정적인 감상들을 기록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몰랐다. 유일한 해결 방법인 일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기록하면서 더욱 심오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모든 어휘와 문장력을 동원해서 그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곱씹게 되는 부정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던 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매일 일기를 쓸 때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의 개수를 맞춰 썼다.

그러니까, 부정적 감정을 5개 썼다면 긍정적인 감정도 5개를 쓰는 스스로의 규칙이었다. 규칙을 세우는 건 좋아해도 지키기는 정말 어려웠지만, 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정적 감정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물 같아서 한 번 깊이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괜히 허우적거리다가 이도저도 못하고 부족한 산소에 숨이 막혀 죽는다. 부정적 감정 속 내 나름의 숨구멍을 만든 것이었다.


 휴직 후 아이패드에 충전기를 꽂아두고 살 만큼 전자책을 읽던 시절(일도 쉬는데 생산적인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 건 죄라고 생각했다. 부정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감사일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걸 읽은 후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감사일기에 대한 영상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감사한 마음을 일기에 적는다는 발상 자체가 내 일기 인생의 근간을 흔드는 대사건이었다. 일상의 감사한 일들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감사는 본인에게 전한 후 소란을 떨지 않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다. 내가 너무 떠들고 다니면 그 사람이 생색내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 괜히 내가 나쁜 사람으로 몰릴 것 같아서. 그래서 '누군가에게 감사한' 일을 일기에 적는 것도 죄스럽게 생각했었다.


 감사일기의 핵심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일상의 모든 일에 대한 감사'이다.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 환경에 놓여있는지 인식하자는 취지의 일기였다. 사실 내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오히려 속에선 반발만 몰아쳤다. 무슨 감사를, 무슨 그렇게 하나하나 감사를 해 식전기도야? 난 무교야! 같은. 하루에 세 개부터 시작해 보자는 말에 나 스스로 혹은 하늘과 땅, 맑은 날에 감사하기보단 동거인에게 고마운 점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정말로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나를 키워준 우리 외할머니와 파트너뿐이기에. 그들이 살아있음에 이미 감사했으니 하나였고, 일찍 퇴근해서 꼬옥 안아주는 날엔 둘이었고, 늦지 않은 시간에 식사 후 함께 티비를 보며 크게 웃은 날엔 셋이었다. 그런 식으로 고마운 마음을 쓰다 보니 자연히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도 맨날 고마워. 항상 고마워는 너무 흔하니까, 네 존재가 매일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하면 늘 돌아오는 파트너의 대답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세상에 내 존재가 고맙다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랑 너뿐일 거라 웃었다. 파트너는 그 말에 말없이 웃으며, 늘 이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래서 내가 고마움을 받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고, 그가 그렇게 고마워하는 내 존재에게서 고마워할 거리를 뜯어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무조건 감사일기가 좋으니 감사일기를 쓰자! 는 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선 그를 상쇄하는 긍정적 감정이 반드시 필요하단 의미다.

 아마 모두들 나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분명 있을 거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당연히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거다. 타인에게만 고맙다고 하면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독에 담긴 물 같은 거다.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선 독에 담긴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나는 독이고, 고맙다는 말은 물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위한 깨끗한 물을 먼저 채워 넣어야 한다.

 스스로의 좋은 점 찾기, 고마워할 점 찾기는 정말 모랫속 사금 찾기보다 어려웠다. 바늘은 보이기라도 하지, 사금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금은 아주 반짝이고, 그 가치 역시 대단하다.

우리의 가치는 금보다 빛나고 귀하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추켜세워도 된다. 추켜세워 햇빛에 드러나야 비로소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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