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되찾기 위하여
약을 먹고 가장 고민되고 나를 괴롭혔던 건,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나일까?'라는 부분이었다.
여느 환자들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들은 많이 공감할 요소일테다.
부정적인 감정들로 범벅이 되어있던 머릿속을 약으로 조금 거둬내니 그제야 정상적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기뻤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이 보이는구나,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구나, 나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가장 어려운, '보통'의 삶이 한 발짝 내게 다가온 기쁨에 처음엔 마구마구 텐션이 올라갔다.
하지만 으레 모든 것들이 그렇듯,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오름과 내림이 있다. 그러니까 엄청 잘 풀릴 때가 있으면 엄청 안 풀릴 때도 있는 게 자연의 법칙. 자연의 극히 일부인, 아주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이라고 그 법칙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분이 너무 좋다가도 다시금 부정적인 감정이 먹구름처럼 마구잡이로 몰려온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지배하는 부정적 감정은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에 절여지고 뭐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원래의 내가 아닐까? 약 복용을 멈추면 두 번 다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 아닐까? 나는 원래 평범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 걸까?' 등등. 비슷한 생각들이 단어와 순서만 바꿔 머리로는 모자라 온몸을 잠식해 왔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부정적이고 우울한 우리의 상태는 정신건강의 면에서 비정상적이기 그지없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평범함' '보통'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정상인, 우리의 감각이 맞다는 거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진짜 자아'인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너무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나 개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저는 개성이 없어요. 제 자아는 불행에서부터 와요."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은 불행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으며, 표현해 낼 수 있다. 이건 단언한다. 불행으로부터 모든 주제를 끌어내는 당신은, 불행하지 않을 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다. 세포 구석구석까지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럼에도 당신이 부정적인 감정과 감각에 돌아가려 하는 건, 인간의 회귀본능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곳에 위치하면 그곳을 돌아갈 곳이라고 인식한 뇌가 그곳에서 벗어나려 하기 싫어하는 거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우리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가장 하기 싫어하는 곳에 반드시 찾는 것이 있을 거라곤 단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싫어하는 것을 극복하고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모 인기 아이돌의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차라리 날아오르면 우리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다. 그러니 부정적 감정의 달콤한(달콤하기보단 쓰고 맛없음에 가까우리라 생각하지만) 유혹에 넘어가기보단 한 발만 나아가보자. 그럼 우리는 무수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거고,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틀어박혀 있을 때 보다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을 거다.
우리는 평범해질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두려워할 필요 없고 고민에 매여 있을 필요도 없다. 물론 스스로 이를 깨닫고 딛고 일어날 때까지 발목을 메어오는 생각은 있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
나 역시 부정적 감정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이미 절반 정도는 빠져나와 있기에 묶여있는 한 발은 이미 벗어난 한 발이보기엔 너무 답답했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으니 이것마저 해보자,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 시도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계시다.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는 부정적 감정을 깨끗이 잘라낸 우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쉬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부정적 감정을 잘라낼 수 있고, 그 잘라낸 곳엔 새로운 싹이 자라날 거다. 까맣게 썩어 들었던 흙을 전부 태워 재로 만들어, 새 흙에 잘 섞어주면 영양분이 된다. 새로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망설이지 않아도 되며, 너무 고뇌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우리는 한쪽 발은 이미 내디뎠다. 그럼 다음 발을 내딛을 뿐이다. 특별한 이유나 동기는 필요 없다. 그저 그렇게 걸어가고 달려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