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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Jul 20. 2020

커피맛을 모르는 바리스타

우리 집 바리스타는 커피 맛을 모른다.


"커피 먹을까?"  말을 꺼내면 방에서 놀고 있던 4살 아들이 제일 먼저 쪼르르 달려온다. 

"내가 타줄게!"라고 대답하며 짧은 다리로 싱크대 위를 오르며 혹시 엄마나 아빠가 먼저 커피를 탈까 봐 마음이 급해져 얼른 서랍에 있는 커피캡슐을 챙긴다. 



주말은 부엌 한편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우리 집 커피 머신이 일을 하는 날이다.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버튼만 누를 줄 알면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집 바리스타는 하고 싶은 게 제일 많은 4살 아들이다.



4살 꼬꼬마 눈에도 커피 머신은 신기하게 보이나 보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버튼을 눌러 커피 머신 뚜껑이 열리면 캡슐을 넣는다. 

또다시 버튼을 누르면 윙~소리와 함께 고소한 커피향이 퍼지며 커피가 나온다.

아직 커피 맛은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가 마시는 모습을 보면 그 맛이 제법 궁금할 테다.

하지만 우리 집 바리스타는 커피 맛을 모른다. 



"아빠는 헤이즐넛, 엄마는 바닐라" 

"엄마가 헤이즐넛 먹으면 안 돼?"

"안돼~ 아빠는 헤이즐넛, 엄마는 바닐라야."

메뉴까지 정해주고는 커피를 내준다.  

우리 집 바리스타가 주로 마시는 메뉴는 우유이다. 

주말 아침 가족이 컵 하나씩 들고 식탁에 옹기종기 모였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를 수백 가지라도 댈 수 있지만 

내가 주말을 기다리는 첫 번째 이유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커피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퇴근해서 후다닥 밥을 먹고 집안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바빠 

흔한 일상 안부조차 묻기 힘든 날들이 많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일상의 바쁨은 잠시 잊고 가족에게 집중할 시간이 주어진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씁쓸하지만 고소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상 이야기, 회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커피 맛을 알아서라기 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로움과 따뜻함이 좋아서 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커피숍을 찾곤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고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커피숍을 찾아 그 공간을 사진에 담고

그 분위기를 커피에 담아 함께 마셨다.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은 이전의 여유로움은 없어졌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편안한 홈 카페에서 익숙한 바리스타의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진 않다. 

짧은 커피타임이 끝나면 다시 개구쟁이 4살 아이와의 주말이 시작되지만

우리 집 바리스타와 같이 커피를 마시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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