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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Jul 31. 2020

부산에서 온 할머니의 미역국

"할머니 안 힘드셨어요?" 


핸드폰 너머 할머니에게 건넨 손자의 첫마디에 어머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30년 동안 부산에 살던 나는 남편 따라 서울에 왔다. 낯선 도시 속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서울. 이젠 아이도 낳고 서울살이에 제법 적응도 되었지만 그래도 한 번씩 나의 살던 고향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또한, 며느리가 생기자마자 아들과 서울로 떠나보낸 어머님도 아들 내외를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괜찮다는 말로 감추셨지만 그래도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으셨을 것 같다. 더욱이 귀여운 손주의 재롱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섭섭함은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하겠지. 요즘은 휴대폰 화면 속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고 100%는 아니지만 그 순간순간을 담아서 보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고 생각하는 게으른 못난 며느리이다.



그래도 타지에서 일하며 육아하는 며느리 그리고 아들과 손자가 언제나 걱정되시는 어머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부산에서 서울로 반찬을 가득 담은 택배 상자를 보내신다. 사랑과 그리움을 듬뿍 담아 만드신 물김치, 장조림, 멸치, 감자 샐러드 그리고 과자와 젤리. 맛있게 먹으면 됐다고는 말씀하시지만 5년 차 주부로서  사랑의 마음만으로 다 하기 힘든 일이란 걸 잘 안다.  자식 생각, 손주 생각에 그 수고로움을 다 감내하셨을 테니깐.



그 정성을 아는지 우리 아들은 할머니 반찬과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베스트는 할머니 미역국이다.

대파, 표고버섯, 양파 껍질, 무, 마른 새우, 멸치, 다시마, 황태를 넣어 우려낸 육수에 참기름에 볶은 고기와 미역을 넣고 집간장으로 넣고 몇 시간을 정성으로 끓인 미역국은 내가 먹어도 정말 맛이 있다. 아들은 "할머니 미역국 맛있어요. 더 주세요."를 외치며 미역 건더기도 다 먹더니 국물까지 후루룩 마신다. 이 맛있는 동영상을 몇 번 아니 몇십 번은 넘게 돌려보셨을 어머님이다.





어제도 우리 집에 반가운 택배 상자가 왔다. 물김치, 멸치, 장조림, 옥수수 그리고 미역국까지 담긴 택배를 보고 우리 집 꼬마가 묻는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거야?" 택배 내용물만 봐도 할머니가 보내주신 거란 걸 이제는 아는 눈치이다. 반찬은 냉장고에 넣고 옥수수는 냉동실에 넣고 과자는 서랍에 넣고 저녁에 먹을 미역국은 냄비에 옮기고 어머님께 영상통화를 건다.


"할머니 안 힘드셨어요?"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우리 집 4살 꼬마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순간 나도 아이의 말에 멈칫했다.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어여쁜 말을 건넨 손자를 보고 어머님도 제법 놀라셨을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신다고 쏟은 수고로움이 아마 반절은 씻기지 않으셨을까?라고 생각하는 며느리이다.


"우리 서진이가 이렇게 말해주니깐 하나도 힘 안 들다"

"어머님, 제가 시킨 거 아니에요. "

"진짜가? 우리 서진이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더니 이제 말도 잘하네"



아들은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참으로 좋아했다. 몇 달 만에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폭 안겨서 부리는 갖은 재롱을 보며 참으로 행복해하셨던 두 분이었다.  지금은 얼굴조차 보기기 힘든 아들을 쏙 닮은 손자를 보며 30년도 더 지난 그 옛 시절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미역국에는 그때의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오늘도 아들은 미역국을 맛있게 먹는다.

아마도 미역국에 담긴 진한 할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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