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좀 걸어, 누가 쫓아와? 왜 이렇게 빨리 걷는 거야?" 오랜만에 외출에서 남편이 나에게 말한다.
내가 빨리 걷는다고? 남편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나의 걸음이 빠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현듯 남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빠르게 걷고 아니 달리고 있었다. 혼자 걸을 때도 여럿이 걸을 때도 나의 걸음은 언제나 빨랐다.
내 신발은 언제부터 바뀌었을까? 아마도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뾰족구두를 신고 어느 아가씨들처럼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뾰족구두에서 단화로, 단화에서 운동화로 아이의 무게만큼 나의 신발은 점점 낮아졌고 낮아진 신발만큼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아이와 함께하기에 굽이 낮은 신발이 발에 더 편해서 좋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길에서 보이는 하이힐의 그녀들이 한 번씩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내 걸음이 어떻게 빨라졌을까? 아마도 출근을 아이와 함께 하면서 였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나는 여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빨리빨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 바빠?", "엄마 늦었어요?"라고 묻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언제나 서두르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출근길은 항상 변수가 많았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도 화장을 하는 사이에 아이가 밥그릇을 엎기도 하고 옷장 앞에서 아이가 본인의 취향을 강력하게 어필하기도 한다. 겨우 옷을 다 입고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 "엄마 똥 마려워요"라는 말에 가방을 내려놓고 얼른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워킹맘에 Mom을 빼면 Working, 직장인이기에 나는 항상 Walking 아닌 Running을 했다.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허겁지겁 주차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헉헉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한 출근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10분이 아쉬웠다.
왜 항상 나는 바쁜 걸까? 걸으면서도 집에 떨어진 치약이 생각나 쿠팡에서 주문을 하고 오늘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마트 어플로 장을 본다. 아이 책을 읽어주면서 빨래를 개고 내 밥을 먹으면서 아이의 밥도 먹인다. 언제나 두 개의 일을 동시에 하는 일상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항상 분주하지만 마음은 불편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남편의 말에 이제는 조금씩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나의 바쁨과 분주함이 어쩌면 가족들에게도 불안함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항상 자기 차례를 기다렸을 것이다. 앉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미안했을 것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지치고 있었고 나의 부지런함은 모두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천천히 걸어서 출근을 해보기로 했다.
뾰족한 하이힐을 신은 건 아니지만 하이힐을 신던 그때의 마음으로 우아하게 걸어서 출근하기.
출근하면서 다른 생각 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보기.
생각과는 달리 뛰어서 출근할 때와 시간 차이는 5분 남짓. 천천히 걸어도 바쁘게 달려도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내가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고 있었구나.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그저 내 마음이 바빠서 나는 아침마다 달렸구나. 이제는 조금씩 천천히 걸어보려고 한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어깨를 펴고 당당한 표정으로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누르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걷기.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그저 아름다운 배경일뿐이다. 하지만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는 색색의 꽃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이 항상 시간이 걸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아이는 작은 꽃, 돌멩이 심지어 죽어있는 작은 매미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간다. 나도 아이처럼 조금 천천히 걸으며 하늘도 보고 길가에 피어있는 민들레도 만져보며 나의 하루하루를 좀 더 느끼며 우아하게 살아야겠다.